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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말 청초 유민승(遺民僧) 사적(2)
1. 홍저(弘儲: 1605-1672)
통주(通州: 현 강소성 남통南通) 사람. 속성(俗姓) 이(李), 호 계기(繼起) 또는 퇴옹(退翁), 담설노인(擔雪老人)이라고도 한다. 명말 고승(高僧)이자 항청(抗清) 지사(志士)이다. 소주(蘇州) 등위산(鄧蔚山) 삼봉사(三峰寺)에 이르러 장공(藏公)을 모시고 불학을 공부했다. 3년간의 정진 끝에 장공(藏公)이 의발(衣缽)을 수여했고 임제종(臨濟宗) 제32대손이 되었다. 후에 상주(常州) 부초산(夫椒山) 상부사(祥符寺)의 주지가 되었다. 저서로 《영암화상어록(靈岩和尚語錄)》, 《상이자령장문저(上爾字靈章聞儲)》 등이 있다.
2. 대착(大錯: 1602-1673)
속성(俗姓) 전(錢), 이름 방기(邦芑). 자 소개(少開) 또는 타산(他山). 명말 청초 남직례(南直隸) 단도(丹徒: 현, 강소성 단도현) 사람. 명청 교체기의 문학가이자 승려이다. 강소성 진강(鎭江)의 전씨 세족으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1645년 청군이 오강 지역으로 진군해 오자, 절강으로 가서 항청 투쟁에 참여했다. 후에 복건(福建)으로 가서 융무제(隆武帝)의 신임을 받아 어사(禦史)직을 제수받아 사천순무사(巡撫四川使)로 파견되었다. 1649년 손가망(孫可望)의 해를 받아 시골로 은거했다. 1654년 승려가 되어 거처지를 “대착암(大錯庵)”이라고 이름지었다. 출가한 제자 11명이 있다. 1659년 청군이 운남(雲南)으로 남하하자 이미 국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하고 계족산(雞足山)에 은거했다. 1661년 운남에서 호남(湖南)으로 건너갔고 1664년에 형산(衡山)으로 가서 살다가 1673년 형산 기슭에서 생을 마감했다. 저서로는 《타산시선(他山詩選)》, 《십년당시선(十年堂詩選)》, 《초서(蕉書)》 등의 시문집(詩文集)이 있고, 《영주부지(永州府志)》, 《보경부지(寶慶府志)》, 계족산지(《雞足山志)》 등을 편찬했다.
3. 담귀(澹歸: 1614-1680)
법명 성인(性因), 속성(俗姓) 금(金), 이름 보(堡), 자 도은(道隱), 호 위공(衛公). 절강성 인화(仁和: 현, 항주) 사람. 숭정 9년(1636) 향시에 급제했고 27세에 진사에 급제하여 임청지주(臨清知州)의 벼슬을 했다. 청군이 오중 지역을 점령하자 남명(南明) 융무제(隆武帝)를 모시면서 예과급사중(禮科給事中)의 벼슬을 했고, 후에 영력제(永曆帝)를 모시면서 병과급사중(兵科給事中)의 벼슬을 했다. 이 과정에서 절강성 항주(杭州), 태주(台州), 복건(福建). 광동(廣東), 조경(肇慶), 소관(韶關) 및 광서의 오주(梧州), 계림(桂林) 등의 지역을 전전했다. 계림에 이른 후 벼슬자리를 그만두고 통정사通政司) 인사기(印司奇)와 모초암(茅草庵)에 기거하면서 승려가 되었다. 후에 광주(廣州) 해동사(海幢寺) 천연(天然) 화상(和尚)의 문하에서 화두(伙頭), 지객(知客) 등의 일을 했다. 청 강희 연간에 단하산(丹霞山) 개벽(開辟) 도장(道場)에 이르러 별전사(別傳寺)라는 불당정사(佛堂精舍)를 지었다. 담귀는 시사(詩詞), 서법(書法) 등에도 능한 애국 승려였다. 저서로 《영남범여(嶺海梵餘)》, 《편행당집(遍行堂集)》 등이 있고, 《소주부지(韶州府志)》, 《조계통지(曹溪通志)》의 편찬 작업에도 참여했다.
4. 함시(函昰)
속명(俗名) 증(曾), 호 천연(天然). 번우(番禺: 현, 광동) 사람. 명말 명초 선종(禪宗) 조동종(曹洞宗) 승려이다. 젊어서 경사(經史)를 공부하여 17세에 제생(諸生)이 되었다. 숭정 12년 불문으로 들어가 도독(道獨) 선사(禪師)를 따라 출가했다. 천태(天台), 유식(唯識), 화엄(華嚴) 등 제가의 학설을 공부했다. 함시 법사는 명말 청초에 선종으로 이름이 나서 많은 제자들이 그를 따랐다. 명이 망한 후 많은 유민들이 그들 따라 출가를 했다. 저작으로 《어록(語錄)》, 《능엄직지(楞嚴直指)》 등이 전한다.
5. 성취(成鷲: 1637-1722)
속성(俗姓) 방(方), 이름 기개(覬愷), 자 인지(麟趾). 번우(番禺: 현, 광동성) 사람. 명말 청초 광동 조경(肇慶) 정호산(鼎湖山) 경운사(慶雲寺)의 승려이다. 출가 후의 이름 광취(光鷲), 자 적산(跡刪), 호 동초산인(東樵山人)이다. 41살에 석동(石洞) 화상에 의거하며 승려가 되었다. 흉환(陶環), 하강(何絳) 등 남명(南明) 항청 지사와 교유가 두터웠다. 또한 굴대균(屈大均), 양패란(梁佩蘭)과 시 창화를 하였고, 월중(粵中) 사인들이 많이 따르며 배웠다. 후에 오문(澳門) 보제사(普濟寺), 조경(肇慶) 경운사(慶雲寺), 광주 대통사(大通寺)의 주지를 하였고, 대통(大通)에서 생을 마감했다. 청대 문인 심덕잠(沈德潛)은 그를 ‘제일의 시승(詩僧)’이라고 평가했다. 작품으로 《늠엄직설(楞嚴直說)》(10권), 《정호산지(鼎湖山志)》(8권), 《함척당집(咸陟堂集)》(43권), 《금강직설(金剛直說)》(1권), 《노자직설(老子直說)》(2권)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