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식인의 아시아 사고>

 

 

발표자: 고성빈(제주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중국의 동아시아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한국과 일본에 비해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가장 큰 이유는 역사적으로 동아시아에 대한 존재인식이 한국과 일본처럼 중차대하게 여겨지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서세동점의 시대에 서구와 일본의 침략에 저항해야 한다는 상황에서 동아시아에 대한 인식이 점차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탈냉전 시대에는 지식계에서 미국과 서구주도의 문화와 지식, 전지구적 자본주의 국가발전방식을 추종하는 성향에 대한 성찰이 일면서 동아시아담론이 전개되고 있다. 정치영역에서는 미국주도의 세계화와 패권주의에 대한 견제, 일본과의 경쟁의식 등이 동아시아지역주의를 추동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주변부의 시각에서 비평해 보면 중국의 동아시아주의는 아직은 정서적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으며 이론적 수준으로 체계화되지 않았다. 21세기 경계에 나온 중국의 동아시아담론에서도 아직은 중국과 동아시아를 동등한 파트너로 인식하는 데 까지는 진전이 안 되고 있다. 그러나 20세기 초반의 아시아주의가 내포하는 아시아를 대표하거나 그 자체라고 하는 사고와는 달리 수평주의의 필요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자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다른 면이다. 따라서 이때에는 중국이 동아시아를 포용하려는 지향도 20세기 초와 같이 전통적 타성에서가 아닌 좀 더 구체적인 이유와 방법을 제시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즉, 동아시아 국가들을 주체적이면서 대등한 상대로 인식하기는 힘들지만 탈냉전시대에 점차로 성장하는 그들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동아시아를 중국이 포용하여 미국/서구/일본과 대면하기 위해서 정부차원에서는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협조가 강조되고 있고, 지식계에서는 동아시아담론을 통하여 지역연대와 공동체구상 등의 주제들이 토론주제로 떠오르고 있다.

아편전쟁 이래로 동아시아에서의 중화체제는 와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연이어 서구와 일본의 침탈로 인하여 중국은 반식민지상태로 전락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시대적 요청에 따라 중국지식인들은 제국주의에 대항하기 위해서 동아시아의 이웃나라들을 우방으로 간주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중국의 동아시아인식은 19세기 말 이래로 서세동점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발아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본과는 달리 중국은 외부의 충격이 금방 내부의 변화를 추동한 게 아니라 외부에서 온 위기를 대면하는 의식과 사고의 내부적 재조정을 밟는 과정이 필요하였다. 이와 같은 중국의 사고체계는 위잉스(余英時)의 논리에 따르면 서양의 “외재초월형문화”에 비해서 중국은 “내향초월형문화”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중국은 외부세계의 자극에 대해 그것을 직접적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자신의 고유의 것과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상당기간 내적갈등상태에 돌입하는 데 이러한 긴장을 통하여 스스로 체득한 조화의 원리를 내재화 한 연후에 그 틀 안에서 행위 하려한다는 의미로 해석이 된다. 따라서 중화주의적 사고의 몰락을 목도하면서 중국 중심의 세계에서 떨어져 나간 동아시아의 독립적 존재의식을 내면화하는 데는 상당한 지적인 갈등이 필요하였으며 현재까지도 동아시아인식에는 그러한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이와 같은 중국의 미약한 동아시아인식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아직도 주요 학문적인 연구저작에서 보듯이 문명과 문화적 개념에서 아시아전체를 나타내는 일본에서 생성된 용어인 “동양”이라는 개념과 “동아시아”라는 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에 중국에서 나온 서구를 표현하는 “西方”에 대응하는 용어로 “東方”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東方哲學槪論』이라는 서적에서는 그 범위가 동아시아를 넘어서 인도, 아랍, 고대이집트와 바빌로니아의 철학을 망라하여 다루고 있다. 그러나 같은 유교권인 동아시아에서 한국, 일본, 베트남 철학의 존재여부에 대해서 사고하려는 경향이 없다. 그래서 “동아시아철학” 혹은 “동양철학”이라는 용어를 거의 사용치 않고 이들을 모두 포함한 의미에서 “중국철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동아시아주변부의 철학의 존재여부에 무관심하다. 이는 중국의 주요사상가들의 저작의 표제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 따라서, 중화체제에서 떨어져 나간 동아시아에 대한 존재인식에 대한 중국의 자각은 지적, 문화적 영역에서 보다도 오히려 정치적인 동기에서 생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무렵 서구와 일본의 제국주의침탈은 중국엘리트들이 전통적으로 가졌던 동아시아에서의 중국의 절대적지위에서의 沒아시아적 인식에 변화를 추동하였다. 즉,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상대적지위로 격하되면서 동아시아인식의 각성이 미약하나마 나타나게 된다. 이 무렵 나오게 되는 “범아시아사고”는 이를 명시적으로 잘 나타내는데 중국의 본격적인 “汎亞論”적인 동아시아인식의 생성이라는 의미가 있으나 동시에 동아시아에 대한 위계적 인식의 한계도 잘 나타내 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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