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연구사업> 중국의 지식인 > 문학예술
『월천음사시(月泉吟社詩)』와 시인
원초에 출현한 대표적인 유민시사(詩社, 吟社라고도 함) 중의 하나는 무주(婺州) 포양(浦陽)의 유민 시인 집단인 월천음사(月泉吟社)이다. 월천음사의 설립과 주요 활동은 지원(至元) 23년(1286)에 시행되었다. 포양 사람 오위(吳渭, 1228-1290)는 1286년 10월 15일 『춘일전원잡흥(春日田園雜興)』이란 시제(詩題)로 각지 유민들을 대상으로 시 창작활동을 열었다.
이듬해 1287년 정월 15일 절(浙)·소(蘇)·민(閩)·계(桂)·공(贛) 등의 지역에서 수천 명이 응시하여 3개월이란 짧은 기간에 총 2,735편을 모집했다. 작품 모집 후 오위는 방봉(方鳳)·사고(謝翶)·오사제(吳思齊) 등 유민 문인을 시험관으로 초청하여 심사와 평가를 거쳐 그해 3월 총 280명을 선정하고, 이 가운데 60명의 우수작을 선정하여 『월천음사시(月泉吟社詩)』(1권)로 엮었다.
『월천음사시』에 실린 창작자는 대부분 문단에 잘 알려지지 않은 포의(布衣) 신분의 민간 유민들이다. 그들의 생애에 대한 정보는 『월천음사시』에 실린 이름(가명)·자(字)·호(號)·지역 등에 불과하다. 대부분 포강(浦江)과 그 부근에 있는 의호(義烏)·동양(東陽)·건덕(建德)·동강(桐江)·분수(分水) 지역 출신이 가장 많으며, 이 외에도 강소 지역의 항주(杭州), 복건(福建) 지역의 삼산(三山), 강소 곤산(昆山), 태주(泰州) 등이 있다. 60명의 출신지(등수 포함)를 보면 다음과 같다.
<표1: 『월천음사시』에 실린 시인>
등수 | 가명 | 관적 | 등수 | 가명 | 관적 | 등수 | 가명 | 관적 |
1 | 羅公福 | 三山(현 福州) | 21 | 社翁 | 釣臺(현 桐廬) | 41 | 冷泉僧志寧 | 杭州 |
2 | 司馬澄翁 | 義烏 | 22 | 騎牛翁 | 三山 | 42 | 吟逸 | 金華 |
3 | 高宇 | 杭州 | 23 | 天目山人 | 義烏 | 43 | 東湖山人 | 杭州 |
4 | 先[仙]村人 | 杭州 | 24 | 安定書隱 | 義烏 | 44 | 九近村 | 杭州山村 |
5 | 山南隱逸 | 義烏 | 25 | 槐窓居士 | 浦陽, 長塘 | 45 | 陳緯孫 | 分水 |
6 | 子進 | 分水, 桐廬 | 26 | 姜仲澤 | 金華 | 46 | 陳鶴皐 | 浦江 |
7 | 栗里 | 金華 | 27 | 陳柔著 | - | 47 | 臨淸 | 建德(현 浙江) |
8 | 倪梓 | 義烏 | 28 | 方尙老 | 桐江白雲村 | 48 | 感興吟 | 桐江 |
9 | 全泉翁 | 杭州 | 29 | 朱孟翁 | 東陽 | 49 | 王進之 | 建德 |
10 | 呂澹翁 | 東陽 | 30 | 愛雲仙友 | - | 50 | 元長卿 | 義烏 |
11 | 方賞 | 桐江(현 桐廬), 新城 | 31 | 陳希邰 | 義烏 | 51 | 聞人仲伯 | 義烏 |
12 | 鄧草徑 | 三山 | 32 | 劉時可 | 雙溪(현 余杭) | 52 | 戴東老 | 浦江 |
13 | 魏子大 | 杭州 | 33 | 嶽重 | - | 53 | 子直 | 分水, 桐廬 |
14 | 喩似之 | 分水(현 桐廬) | 34 | 雲東老吟 | 義烏 | 54 | 襲慶 | 苕水(湖州) |
15 | 躡雲 | 建德 梓州 | 35 | 避世翁 | 義烏 | 55 | 九山人 | - |
16 | 玉華吟客 | 分水 | 36 | 觀我 | 金華 | 56 | 爽[木+石]區 | 金華 |
17 | 田起東 | 昆山(현 江蘇) | 37 | 徐端甫 | 義烏 | 57 | 柳州 | 浦江 |
18 | 唐楚友 | 錢塘(현杭州) | 38 | 龜潭 | 金華孝順鎭 | 58 | 草堂後人 | 杭州 |
19 | 識字耕夫 | 泰州(현 江蘇) | 39 | 樵逸山人 | 桐江 | 59 | 君瑞 | 桐江 |
20 | 學古翁 | 桐江 | 40 | 柳圃 | 浦江 | 60 | 靑山白雲人 | 杭州 |
출처: 鄒艶, 『月泉吟社硏究』(人民出版社, 2013, 311-318쪽)의 자료를 토대로 필자 재정리
월천음사는 발기에서부터 조직, 실행을 거쳐 시상(施賞)에 이르기까지 이전의 시사와는 달리 비교적 완전한 조직을 갖춘 규모 있는 시 창작활동을 벌여왔다. 그들의 조직과 창작활동은 후대 유민시사, 시 창작내용 및 문인결사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