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학 지식인 (3)

조회 수 2993 추천 수 0 2012.05.31 02:09:32

31. 우이캉(伍貽康, 1936-)

쟝쑤 난징 출생. 회족(回族). 유럽학 전문가, 정부특별진첩 수혜자.

푸단대학교 대학원 역사계를 졸업하였다(1961.7). 상하이사회과학원 세계경제연구소 소장, 푸단대학 부교무장과 상하이시 고교국(高敎局) 상무부국장을 역임했다. 최근에는 중국세계경제학회 부회장, 중국유럽학회 부회장, 중국EU연구학회 회장, 상하이유럽학회 회장, 상하이국제관계학회 부회장, 상하이시 정협위원, 박사 지도교수를 맡고 있다. 상하이시 철학사회과학 우수성과우수저작상, 논문일등상, 저작삼등상, 논문삼등상 등을 수상하였고, 중국우위장세계경제특등상(中國吳玉章世界經濟特等獎), 상하이시1987년과학전선선진공작자 표창 등을 수상하였다.

주요 연구방향은 유럽단일화로서, 《歐洲經濟共同體》, 《歐共體一體化進程及其歷史地位》, 《歐洲共同體: 體制, 政策, 趨勢》, 《區域性國際經濟一體化的比較》, 《21世紀世界經濟的先導》, 《經濟全球化論叢》(주편) 등을 저술하였다.

 

 

32. 웡두졘(翁獨健, 1906-1986)

푸졘 푸칭(福淸) 출생. 원명 셴화(賢華). 몽원사, 민족사 권위자.

윈난대학, 중궈대학, 옌징대학 교수를 역임하였다. 1949년 이후 베이징시교육국 국장, 국가민족사무위원회 위원, 민족역사연구사업 지도위원회 부주임위원, 중국민족연구학회 부이사장, 중국민족연구단체연합회 고문, 중국사회찬상원 민족연구소 연구원․부소장․고문, 중국사회과학원 중국변경사지연구중심 주임, 중앙민족학원 역사계주임․연구부주임, 중국사학회 상무이사․이사장, 중국몽고사학회 이사장․명예이사장, 중국원사연구회 명예회장, 중아문화연구국제협회 부주석 등을 역임하였다.

1932년 옌징대학 역사계를 졸업하였다. 옌징대학에서 훙예(洪業), 천위안(陳垣)의 지도를 받으면서 몽원사 연구에 종사할 것을 결정하였다. 1935년 동대학 연구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35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1938년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같은 해 프랑스로 건거나 파리대학과 동방언어학원에서 폴 펠리오(Paul Pelliot)의 지도 아래 연구활동을 하였고, 1939년 귀국하였다.

1949년 이후 몽원 민족사와 관련하여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1952년 중앙민족학원 연구부 주임을 맡으면서, 울란바토르에 가서 중소몽합작 몽고사공동연구에 참여하였고, 1956년 중앙민족학원 역사계주임을 맡으면서 전인대 민족위원회에 소수민족역사조사조를 조직하고 내몽고 동북조사조 조장을 맡았으며, 《蒙古史簡史》 저술에 참여하고 심정하였다. 중국 [철학사회과학12년발전계획] 제정에도 참여하였다. 1958년 중국과학원 민족연구소가 성립하자, 초대 부소장을 맡으면서 몽고사 저술사업에 참여하였고, 중국과학원 역사연구소 연구원으로서 원사 연구을 주도하였다. 1961년에 우한(吳唅), 졘보짠(翦伯贊) 등과 함께 민족역사지도위원회를 발기하여 부주임위원과 비서장을 맡았다. 그 외 《中國歷史地圖集》의 민족 관련 부분에서 지휘를 맡았다.

문화대혁명기간 린뱌오(林彪), 쟝칭(江靑) 등에 의해 하방당했으나, 중공11계 3중전회 이후 복권되었다. 이후 중국사회과학원 민족연구소에서 민족 관련 연구를 주도하면서 많은 성과를 남겼다.

대표적 연구성과로서 《新元史․蒙元幾史記愛薛傳訂誤》, 《元典章譯語集解》, 《蒙古時代的法典編纂》, 《蒙古族簡史》(편), 《蒙古人民共和國通史》(공저), 《蘇聯歷史綱要》(공역), 《中國民族關係史綱要》(주편, 국가“65”계획 중점과학연구 항목) 등이 있다.

 

 

33. 왕자졘(王家儉, 1925- )

안후이 워양(渦陽) 출생. 저명 근대해군사(近代海軍史) 학자.

타이완사범학원(臺灣師範學院) 사지계(史地系) 졸업(1952), 타이완대학(臺灣大學) 역사연구소 석사)1963), 영국 런던대학 방문연구(1970-71), 미국 하버드대학 방문연구(1980-1981)

타이완사범대학 역사계 강사, 부교수, 교수, 타이완사범대학 역사계주임, 타이완사범대학 역사연구소 교수, 푸런대학(輔仁大學) 역사계 겸임교수, 중힝대학(中興大學) 역사계 겸임교수, 홍콩주하이서원 객좌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 캐다나 밴쿠버에 체류하며 사학연구 중이다.

연구저서로서 《李鴻章與北洋艦隊: 近代中國創建海軍的失敗與敎訓》, 《魏源对西方的认识及其海防思想》, 《近代中国对西方及列强认识资料汇编(1825-1861)》(편), 《马新贻生平事略》(편), 《中华民国建国史》第二册(편) 등이 있다.

 

 

34. 왕쟈화(王家驊, 1941-2000)

1968년 난카이대학(南開大學) 역사계를 졸업하였다. 난카이대학 역사연구소 일본사연구실 교수․박사지도교수, 베이징대학 비교문학과비교문화연구연구소 겸직교수, 중국사회과학원 동방문화연구중심 특약연구원, 중국일본사학회사상사․문화사전문위원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1994년에 일본문부성 국제일본문화연구중심 객원교수를 하였다.

주요 저작으로 《日中儒學比較》, 《儒家思想與日本文化》, 《儒家思想與日本現代化》 등이 있다.

 

 

35. 왕훙쥔(王宏鈞, 1926-)

안후이 징현(涇縣) 출생. 명청사학자. 박물관학자.

베이징대학 역사계에서 명사를 전공하였고, 런민대학(人民大學)에서 청사를 전공하였으며, 중국정파대학(中國政法大學)에서 중국법제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역사박물관 연구원, 당위 서기. 부관장, 중국박물관학회 대리사장, 국제박물관협회 중국국가위원회 주석․아태지구 위원회 위원, 중국명사학회 고문, 중국경제사학회 상무이사, 중국농민전쟁사연구회 상무이사, 《中國大百科全書․中國歷史》청사권(淸史卷) 부주편, 《中國歷史大辭典》 청사(淸史) 부주편, 《中國大百科全書․文物》 박물관권(博物館卷) 박물관학 주편을 역임하였다. 그 외 중국역사박물관 학술위원회 위원, 국가문물국박물관전문가조 성원, 베이징시문물국박물관전문가조 성원, 베이징사범대학 역사계 겸직교수, 중국문물학회 고문, 중국도시과학연구회 역사문화명성위원회 고문을 맡았다.

주요 저서로서 《中國博物館學基礎》, 《淸國開國皇帝皇太極傳》 등이 있다.

 

 

36. 왕원추(王文楚, 1933-)

저쟝 난쉰(南潯) 출생. 역사지리학자.

현 푸단대학 역사계 역사지리연구소 교수, 중국고도학회(中國古都學會) 이사, 역사지리전업위원회(歷史地理專業委員會) 위원을 맡았다.

주요 저작으로 《元丰九域志》(공저)가 있고, 그 외 다수 논문이 있다.

 

 

37. 왕쓰즈(王思治, 1929-)

쓰촨 쯔궁(自貢) 출생. 청사 권위자. 양한노예사회설(兩漢奴隸社會說)과 위진봉건론(魏晉封建論)의 대표자.

1953년 쓰촨대학(四川大學) 역사계를 졸업하였고, 1956년 중국런민대학 연구생반을 졸업하였으며, 이후 런민대학에서 교직을 맡았다. 1986년 국무원 학위위원회로부터 박사 지도교수 자격을 평가받았다. 그 외 중국런민대학 청사연구소 연구소주임, 청사연구소 학술위원회 부주임, 중국런민대학 학위위원회 위원, 런민대학 국가중점학과 중국고대사 학술리더를 역임하였다. 1989년 하버드대학 페어벵크연구센터에 방문학자로서 강의와 학술교류를 하였다. 1996년에서 98년에 홍콩대학 역사계 겸직연구원으로 초빙되었다. 1999년에 퇴직하였다. 2005년 9월 중국런민대학으로부터 “중국런민대학명예교수”로 임명되었다. 최근 “동방사학문고(東方史學文庫)” 학술평심위원회 위원, 《明淸論叢》편집위원, 국가청사편찬위원회 학술사업에 참여하였다.

대표적 연구서로서, 《淸史論稿》, 《淸代通史》(주편), 《康熙事典》(공저), 《康熙大帝》, 《承德避暑山莊與外八廟》, 《兩漢社會性質問題及其他》, 《人類史》제5권《16-18世紀的中國》(피터 버크[Peter Burke] 주편), 《淸代人物傳稿》1,3,5,8권(주편), 《王思治自選集》 등이 있다.

 

 

38. 왕루이밍(王瑞明, 1920-2010)

후베이 톈먼(天門) 출생. 문화사, 사상사학자.

1949년에 푸단대학 사지학계를 졸업한 후에, 화중사범대학(華中師範大學) 역사계에 임용된 이래 평생 화중사범대학 역사문화학원에서 후학 양성에 노력하였다. 중국고대사, 송사, 송대사료학 등을 강의하였다. 중난신철학원(中南神哲學院)에서 겸임교수를 하면서 천주교사를 강의하였다. 그 외 중국역사문헌연구회 상무이사, 후베이성 천주교 애국회 부주석을 맡았다.

고적 정리 방면에서 리강(李綱)의 《梁溪全集》 의 점교를 완성했고, 《宋史》간체자 횡배본의 점교작업을 주관하였으며, 《丘濬文集》의 정리에도 참여하였다.

연구서로《宋儒風采》, 《後漢書辭典》(공편), 《三國志辭典》(공편), 《嘉定文化硏究》(주편), 《文獻通考硏究》(주편) 등이 있고. 번역서로 《印度社會》가 있으며, 대중서로 《中國史學名著題解》(공저), 《中國古代學者百人傳》(공저)가 있다.

 

 

39. 왕윈하이(王雲海, 1924-)

쟝쑤 페이현(沛縣) 출생. 송대사학자.

현 허난대학(河南大學) 송대연구중심 교수, 주임 겸 송사연구실 주임, 중국송사연구회이사를 역임하였다. 주로 송대 문헌과 문화사 연구에 주력하였다.

주요 저작으로 《宋會要輯稿硏究》, 《宋會要輯稿考校》, 《校勘述略》 등이 있다.

 

 

40. 왕룽성(王戎笙, 1929-)

후베이, 한촨(漢川) 출생. 청대사 전문가.

중국런민대학의 연구생반을 졸업하였다. 중국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청사연구실 주임, 학술위원회 회원 등을 역임하였고, 현 중국사회과학연구원 연구원이다.

진한사, 청대사, 사학이론, 중국근현대 사학사, 궈모뤄(郭沫若), 타이완지구 사학 등 다양한 방면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왔다. 1983년부터 국가중점항목인 《淸代全史》를 주관하였는데, 이 책은 중국사회과학원 1977-1991년 우수과연성과상과 제8회중국도서장을 수상하였다. 1996년부터는 중국과학원 중점항목인 “李自成結局硏究”과제를 지휘하였다.

연구성과로서 《太平天國運動史》(공저)、《台港清史研究文摘》二书,《馬克思主義歷史觀與中華文明》(주편),《中国考試史文文獻集成》清代卷 (주편), 《清代全史》(주편), 《李自成结局研究》(中國社會科學院歷史所 李自成結局硏究課題組 편) 등이 있다.

 

 

41. 왕징루(王靜如, 1903-1990)

허베이 선쩌현(深澤縣) 출생. 서하학(西夏學) 전문가. 언어역사학자. 민족학자. 필명 페이례(菲烈).

1929년에 칭화대학 연구원을 졸업한 후에 프랑스, 영국, 독일 등에서 언어학과 중앙아시아사와 어학, 인도유럽어비교언어학과 한학 등을 수학, 연구하였다. 귀국 후 베이핑연구원(北平硏究院) 사학연구소 연구원과 중파대학(中法大學) 교수, 옌징대학 언어학교수, 중궈대학 문학원 연구원 지도교수, 중국과학원 고고연구소 연구원, 중앙민족학연구원 부교수, 중국과학원 민족연구소 연구원과 학술위원, 중국민족연구학회 상무위원, 중국언어학회 이사, 중국음운학연구회와 베이징시언어학회 고문 등을 역임하였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西夏硏究》第1輯, 《西夏硏究》第2輯, 《西夏硏究》第3輯은 서하어음에 대한 연구와 서하문 불경조판 연구, 그리고 서하문불경을 번역하여 중문과 티베트문을 대조하여 미국학자의 학술을 반박한 것을 담고 있다. 서하연구의 필독서인 이 3부작은 1936년에 중국인 최초로 프랑스학술원 동방학 “s.Julien” 상금을 수상하였고, 그는 프랑스파리언어학회 회원으로 추존되었다. 서하연구외 거란, 여진, 위구르, 몽고, 토가, 다우르 등 소수민족 언어문자에 대해서도 중요한 연구성과들을 다수 남겼다. 특히 〈突厥文回紇英武威遠毗伽可汗碑譯释〉(《輔仁學志》1938年第7卷第1、2期合刊)은 중국에서 처음으로 돌궐문을 가지고서 위구르역사를 연구해낸 것이다.

중요 연구서로 《西夏硏究》第1輯, 《西夏硏究》第2輯, 《西夏硏究》第3輯, 《西夏硏究》第4輯(공저), 《中國古音(切韻)》(공저), 《西夏硏究》第5輯(미간), 《西夏文字典》(미간) 등이 있다.

 

 

42. 왕중뤄(王仲犖, 1913-1986)

저쟝 위야오(余姚) 출생. “남당북왕(南唐北王)”이라 일컬어진 위진남북조수당오대사의 대가.

상하이타이옌문학원(上海太炎文學院), 중양대학(中央大學), 산둥대학(山東大學) 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1949년 이후에는 산둥대학 역사계 주임, 중국당사학회(中國唐史學會) 제1회, 2회 부이사장, 산둥성사학회 제1,2회 이사장, 국문원 고적정리출판규획소조 부소장, 국무원 학술위원회 제1회 학과평의조 조원, 《文史哲》 편집회 부주임 등을 역임하였다.

왕중뤄는 평생 스승 장타이옌의 영향 속에서 학술연구를 하였다. 1937년 상하이 정펑문학원(正風文學院)을 졸업하였는데, 장타이옌의 말년 제자로 받아들여졌다. 1930년대 초에 학술연구에 종사하기 시작할 때 받은, 사학연구와 국가의 운명을 연구방향으로 하라는 스승의 가르침과 “오랑캐가 중국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대대로 그 관록을 받지 마라”는 유언을 평생 지켰다. 그는 중일전쟁이 발발한 후, 1938년 상하이 조계에 타이옌문학원(太炎文學院)을 창립하고 원장비서실주임 겸 중국통사교수를 맡아 중국통사를 가르쳤다. 1940년에 왕징웨이(汪精衛) 정부의 문화도구가 되지 않기 위해 타이옌문학원을 해체하고 상하이를 떠났다. 그 후 중양대학을 거쳐 1947년에 당시 칭다오에 있던 산둥대학에 임용된 이후 40여 년 동안 산둥대학에서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그의 주요 연구방면은 위진남북조수당오대사다. 1950년대부터 위진남북조사를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현재 위진남북조 사학계의 “남방경제대개발, 북방민족대융합”이라는 관점은 바로 왕중뤄의 관점을 받아들인 것이기도 하다.

그 밖에 전근대사 중요문제 관련 연구와 고적 정리 방면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고사분기 문제, 춘추전국기 농촌공사와 휴경제도 문제, 물가문제, 명대방직생산문제, 자본주의맹아문제 등에 대한 연구를 하였다. 특히 그는 고사분기에서 “위진봉건론(魏晉封建論)”을 계승하여 발전시켰다. 《西昆酬唱集》 주석을 비롯하여 중화서국 신교점판본 《二十四史》에도 참여하였으며, 고등원교의 《自治通鑒》을 주편하기도 하였다. 그 외 스승 장타이옌의 《太炎先生全集》편집출판사업도 맡았다.

한편 산둥대학에서 퉁스예(童書業)교수와의 깊은 우정은 문혁기간의 비판받는 와중에도 변치 않는 것이었다. 또한 그는 산둥대학에 대해서도 깊은 애정을 가졌는데, 베이징대학에서 세 차례나 초빙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거절할 정도였다.

중요저작으로 《魏晉南北朝史》, 《隋唐五代史》, 《關于中國奴隸社會的瓦解及封建關係的形成問題》, 《北周六典》, 《北周地理志》등이 있다.

 

 

43, 왕춘량(王春良, 1928-)

쟝쑤 우시(無錫) 출생. 라틴아메리카사 전문가.

둥베이사범대학(東北師範大學) 극동 및 동남아시아사(遠東及東南亞史)연구생반을 졸업하였고, 산둥사범대학(山東師範大學) 역사계 교수로 임용되었다. 1986-2001년에 원국가교위 전국중소학교재 심정위원회 위원, 역사학과조 조장을 겸임하였다. 그 외 중국라틴아메리카사연구회 상무이사, 부이사장과 중국세계근현대사연구회 이상, 산둥역사학회 상무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저작으로 《拉丁美洲民族民主運動史論》, 《世界現代史》, 《黑西哥獨立戰爭》 등이 있다.

 

 

44. 왕즈라이(王治來, 1930- )

후난 헝산(衡山) 출생. 신강 민족사 전문가.

중국과학원 민족연구소 고대사연구실 부주임, 신강사회과학원 중아연구소 부소장, 부연구원, 후난사범대학 역사계 교수, 중국중아문화연구협회 제1회 상무이사, 중국중외관계사학회 제1회이사 겸부비서장과 제1회 상무이사, 중국몽고사학회제1회 이사, 후난역사학회 부회장, 후난세계사연구회 1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1992년 정부특수진첩(政府特殊津貼)을 수여받았다. 1998년 중공후난성위, 성인민정부로부터 “명예사회과학전문가”의 칭호를 수여받았다.

후난대학 중문계 졸업한 후에 1954년에 다시 베이징대학에 입학하여 1959년에 베이징대학 역사계 5년제 본과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에 중국과학원 신강분원에 배치됨과 동시에 중국과학원 민족연구소 신강소수민족사회역사조사조에 차출되어 연구를 하게 되었다. 1962년에 다시 신강과학분원으로 돌아가 신강역사 연구와 편사를 맡았다. 문혁기간에 《拉失德史(아브두라시드사)》를 정리, 교주하였다. 1981년 신강사회과학원이 설립된 후 신강사회과학원에서 계속 연구활동 하였고, 1998년 퇴직하였다.

주요저작으로 《中亞史》, 《新疆簡史》(공저, 1986년 신강철학사회과학우수저작특등상 수상), 《中亞史綱》(1992년 후난성제1회사회과학우수정과 2등상 수상, 1995년 국가교위1회인문사회과학성과2등상 수상), 《中亞近代史》(공저, 1992년 국가교위1회고등학교출판사우수학술전저 우수상 수상), 《中亞國際關係史》. 《中亞通史》古代卷 上, 下, 《中亞通史》 近代卷, 등이 있다(《中亞通史》는 2005년 2005년 제5회신강도서출판일등상, 2006년 후난성 제8회철학사회과학우수성과 일등상을 수상).

 

 

45. 왕시(汪熙, 1920-)

안후이 슈닝(休寧) 출생. 중국근대경제사학자.

1944년에 미국 유학을 떠나 1947년 펜실베니아대학 와튼경영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48년에 귀국한 이래, 중국근대경제사, 중미관계사와 국제경제관계를 가르치고 연구하였다. 푸단대학교수, 박사 지도교수, 푸단대학 미국연구중심 부주임, 푸단대학 미국연구중심 학술 고문 및, 《美國硏究》, 《學術界》, 《社會科學論壇》의 편집위원과 학술고문, 상하이상학원 명예원장, 전국중미관계사학회 부회장(1994-98) 등을 역임하였다. 1992년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으로부터 종신정부특수진첩을 수여받았다. 1992-1996년에 The Journal of American- East Asian Rrelation의 주편위원회 회원으로 초빙되었다.

주요 저작으로 《求索集》, 《國際貿易與國際經濟合作》, 《約翰公司- 英國東印度公司》, 《中美關係叢書》(주편), 《盛宣懷檔案資料選集》(주편), American Management Association series(주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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