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학 지식인(5)

조회 수 3164 추천 수 0 2012.06.21 17:20:30

61. 위성우(于省吾, 1896-1984)

랴오닝 하이청(海城) 출생. 고문자학자. 자는 쓰부(思泊). 신증파(新證派)의 대표적 인물.

1919년 선양국립고등사범(沈陽國立高等師範)을 졸업한 후에, 푸런대학(輔仁大學) 교수, 베이징대학 교수, 옌징대학(燕京大學) 명예교수, 고궁박물원 전문위원, 둥베이런민대학(東北人民大學, 현 지린대학[吉林大學]의 전신) 역사계 교수 및 고문자연구실 주임 겸 교학술위원회 위원, 중국고문자연구회 이사, 중국고고학회 명예이사, 중국어언학회 고문 겸 학술위원, 중국훈고학회 고문, 국무원고적정리출판규획소조 고문 등을 역임하였다. 주로 갑골문, 금문의 연구와 고석을 비롯하여 고대전적 고증에 주력하여 중국 고대사 연구에 크게 기여하였다.

주요 연구성과로서 《甲骨文字釋林》,《雙劍誃殷契騈枝》, 《雙劍誃殷契騈枝續編》, 《雙劍誃殷契騈枝三編》, 《雙劍誃吉金文選》, 《雙劍誃吉金圖錄》, 《雙劍誃古器物圖錄》, 《商周金文錄录遺》, 《雙劍誃尚书新證》, 《雙劍誃詩經新證》, 《雙劍誃易經新證》, 《雙劍誃諸子新證》, 《澤螺居詩經新證》 등이 있다.

 

62. 유중(尤中, 1927-)

윈난 쉬안웨이(宣威) 출생. 윈난대학(雲南大學) 역사계 교수, 중국민족사 연구의 거봉. 정부특수진첩 수혜자(1992).

윈난대학 교수 및 중국민족사박사지도교수, 윈난대학 민족사교연실 부주임, 윈난대학 서남변강민족사연구소 소장, 서남고적연구소 소장, 중국백월민족연구학회 부회장, 《雲南省志》 부총편, 윈난성 고등원교 고적정리위원회 상무부주임위원, 《歷史地理》와 《中華一統叢書》편집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윈난대학 역사계를 졸업한 후, 평생 지방사와 민족사 연구에 종사하였다. 지방사, 지방연혁사, 윈난민족사, 서남민족사 및 중화민족 발전사 등의 영역을 연구하였는데, 특히 민족사 연구에 큰 성과를 쌓았다.

주요 연구성과로서, 《尤中文集》, 《西南民族史論集》, 《焚古通記淺述校注》, 《西南民族歷史究集刊》(주편), 《西南古籍研究》(주편), 《西南民族史研究》(주편), 《中国民族史研究》, 《中国歷史地圖集》(譚其驤 주편), 《中國通史》(白壽彝 주편), 《中国歷史大辭典》(참여), 《中国大百科全書·民族》(참여) 등이 있다.

 

63. 슝더지(熊德基, 1913-1987)

쟝시 난창(南昌) 출생. 위진남북조사 전문가.

1935년 중궈대학(中國大學) 문사계에 입학하였다. 학생항일운동에 참여하여 국민당에 체포되기도 하였다. 1946년 샤먼대학(厦門大學) 역사계 교수로 초빙되었고, 1947년에는 중공민서남당(中共閩西南黨) 조직과 관계를 갖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이후 중공샤먼대학 당지부서기 등도 역임하였다. 그 외 샤먼대학 교무위원, 부교무장, 교학계획연구부 주임, 푸저우대학(福州大學, 푸졘사범학원[福建師範學院]의 전신) 교무장과 교수, 중국과학원 고대사연구소 소장, 중국사회과학원 역수생원 역사계 주임 및 위진남북조사 전공 지도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주요 연구성과로서 《論武則天》, 《六朝史考實》, 《熊德基集》 등이 있다.

 

 

64. 슝더산(熊德山, 1891-1939)

후베이 쟝링(江陵) 출생. 중국 초기 마르크스주의 사학자. 중국사회과학가연맹 조직자.

1907년부터 일본 고분학원(宏文學院), 메이지대학(明治大學)에서 유학하였고, 1909년 귀국하였다. 1927년부터 대학 교육에 종사하기 시작하였고, 변증유물주의와 역사유물주의 관점에서 중국사와 문화를 연구하였다.

우창법과대학(武昌法科大學), 중산대학(中山大學), 상하이 정파학원(政法學院), 지난대학(暨南大學), 광시성립사범전과학교(廣西省立師範專科學校), 광시대학(廣西大學) 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리다(李達), 덩추민(鄧初民), 쳰나수이(錢納水) 등과 쿤룬서점(昆侖書店)을 창립하여 사회과학 서적을 출판하였고, 또한 이들과 함께 “中國社會科學家聯盟”을 조직하기도 하였다. 광시대학에서는 중국문화사, 중국근대사, 중국현대사 등의 과정을 교학하였다.

주요 저술로서《中國革命的出路》, 《社會主義之基礎知識》, 《社會問題》, 《社會思想》, 《唯物史觀經濟史》(역서), 《歐洲經濟通史》(역서), 《西方哲學史》(역서) 등이 있다.

 

 

65. 슝톄지(熊鐵基, 1933-)

후난 창더(常德) 출생. 진한사학계의 태두.

1956년 화중사범학원(華中師範學院)을 졸업하고 1958년에 화둥사범대학(華東師範大學) 연구생반을 졸업하였다. 화중사범대학 역사문화학원 교수, 박사지도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중국고대사를 교육, 연구하였는데, 특히 도가사상사, 진한문화사 연구에 주력하였다.

주요 저서로서 《秦漢官制史稿》, 《秦漢軍事制度史》, 《漢唐文化史》, 《秦漢文化志》, 《秦漢新道家》, 《中国老學史》(공저), 《二十世紀中國老學》(공저), 《中国莊學史》(공저), 《道教文化十二講》, 《傳統文化與中國社會》 등이 있다.

 

 

66. 웨이위안(魏源, 1794-1857)

후난 샤오양(邵陽) 출생. 청대 계몽사상가이자 정치학자, 역사학자, 지리학자.

웨이위안은 학문을 논하는 것을 “經世致用”을 종지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여 변법을 주장하였다. 또한 서양의 선진과학기술을 배워 오랑캐의 장점으로써 오랑캐를 제압한다는 신사상을 주장하였다.

웨이위안의 대표작 《海國圖志》(1847)는 세계 각국의 지세, 산업, 인구, 정치, 종교 등 각 방면을 서술한 지리서다. 그는 아편 전쟁 이후 서양의 입장에서 서양을 보고자 이 책을 저술하였다. 이후《해국도지》는 중국을 비롯하여 한국, 일본 등에서 부국강병에 입각하여 세계에 대한 지식을 섭취하고자 할 때, 중요한 참고서적이 됨으로써, 경전적 지위를 갖게 되었다.

 

 

67. 왕중한(王鐘翰, 1913-2007)

후난 둥안(東安) 출생. 청사, 만주족사 권위자.

중양민족대학(中央民族大學)의 역사계 및 민족사연구소 교수, 박사 지도교수, 종신교수, 역사계 명예주임, 만학연구소(滿學硏究所) 소장을 비롯하여, 중국사회과학원 민족연구소 겸직연구원, 베이징시역사학회 고문, 중국민족사학회 고문 등을 역임하였다.

1934년 베이핑 옌징대학(燕京大學) 역사계에 입학하여, 훙예(洪業), 덩즈청(鄧之誠), 구졔강(顧詰剛) 등으로부터 배웠다. 그는 특히 훙예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아 학술과 국가, 민족의 운명의 관계를 고민하게 되었다. 당시 일본학자들이 역사를 왜곡하여 중국의 영토를 침략하고 중국을 분열시키려는 책동에 대항하여, 그는 청사를 전공하고 동북지구 역사를 연구하여 역사의 진상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1938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1940년에 옌징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1943년부터 옌징대학 강사로 재직하다가, 1946년 미국으로 건너가 하바드대학에서 2년간 수학하였다. 귀국 후에 다시 옌징대학 역사계 부교수로 임용되었다. 1952년부터 중양민족학원(中央民族學院)에 부임하여 1956년부터 역사계 교수로 발령받았다. 1950, 60년대의 반우파운동, 문화대혁명 시기에 논저를 발표할 권리마저 박탁당한 와중에도 계속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를 진행하여, 1978년 이후 그 성과를 대량 발표할 수 있었다.

만년에 그는 소수민족에 대한 관심 속에서 한족 중심의 전통적 봉건왕조체계를 탈피하고자 하였다. 그는 여러 역사 시기에 소수민족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데 주목하여, 민족평등의 시각에서 소수민족과 한족을 역사상 형제민족으로서 파악하여 민족문제를 분석하고자 하였다.

주요 연구 성과로서, 《辨紀曉崗手書簡明目錄》, 《淸世宗奪嫡考實》, 《滿足簡史》, 《淸史雜考》, 《淸史新考》, 《中國民族史》(주편), 《四庫禁段書叢刊》(주편), 《淸史列傳》(단독 점교)《淸史考》(점교 참여) 등이 있다.

 

 

68. 웨이쳰즈(魏千志, 1930-)

허난 화현(滑縣) 출생. 명청사. 허난성 중점과학중국고대사전업 제일학술 대표.

1954년 허난대학(河南大學) 역사계를 졸업하고, 1964-64년간 난카이대학(南開大學) 역사계 진수과정을 마쳤다.

허난대학 역사계 교수, 허난대학 역사계 중국고대사교연실 주임, 《史學月刊》겸직편집위원, 카이펑시역사학회 (開封市歷史學會) 회장, 카이펑시 유다역사문화연구회 고문 등을 역임하였다. 그 외, 고등원교 문과교재인 《中國古代史》의 하편을 주편하였고, 《中國古代史敎學大綱》 제정 사업(1982)에 참여하고, 1995년에는 국가교위로부터 인문사회과학연구우수성과상을 평가하는 통신평가전문가로 위촉되기도 하였다. 후난성의 우수교수로 평가받았고, “三育人”의 칭호를 받았다.

주요 연구성과로서 《明淸史槪論》, 《中國古代史》下(주편), 《中國農民起義領袖小傳》(주편), 《唐宋元明淸史論集》(주편), 《中國歷史》第1冊(공저), 《李文成起義》(공저), 《東亞之世界史探究》(공저) 등이 있다.

 

 

69. 인다(尹達, 1906-1983)

허난 화현(滑縣) 출생. 고고학자.

허난대학(河南大學)을 졸업하였다. 중앙연구원 역사어언연구소 연구원으로서, 은허(殷墟)와 쥔현(浚縣)의 신촌(辛村)과 리자오(日照) 발굴에 참가하였다. 1938년에 입당하고, 산베이공학(陝北公學), 마르크스레닌학원(馬列學院) 등에서 근무하였다. 신중국 성립 초기에 런민대학(人民大學) 연구부 부부장, 베이징대학(北京大學) 부교무장을 맡았던 것을 비롯하여. 중국과학원 역사연구소 부소장, 고고연구소 부소장, 소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5년부터는 중국과학원 철학사회과학부 학부위원회 상무위원을 맡았다. 그 외 《歷史硏究》의 주편, 중국고고학회의 초대, 이대 이사회 부이사장, 중국사학회 상무이사(1980), 문화부 국가문물위원회 위원(1983), 제1,2,3회 전인대 대표, 제5,6회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그는 중국 고고학의 초기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는데, 특히 은(殷) 유적 발굴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는 량쓰융(梁思永)이 지휘한 허우강(后岡) 유적지, 산둥 리자오 유적 발굴 등에 참여하여, 앙소문화, 용산문화, 상은문화를 밝히는 데 기여하였다. 특히 그는 량쓰융, 스장루(石章如), 치옌페이(祁延霈) 등과 함께 은대 왕릉 발굴에 주력하였는데, 은대의 ‘人牲’ 제사 관습을 밝혀내어 은대 사회역사 연구에 중요한 문물 자료를 제공할 수 있었다.

대표적 연구성과로서 《新石器時代》, 《從考古學上所見到的中國原始社會》, 《中國史學發展史》 등이 있다.

 

70. 리야눙(李亞農, 1906-1962)

쓰촨 쟝진(江津) 출생. 중국 고대사 권위자. 상하이역사학회와 상하이역사연구소 창립자.

원명 리자정(李祚正), 또는 리간정(李旦正)이라고도 한다.

도쿄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을 졸업하였다. 재학 중에 ‘사회과학연토회’를 결성하여 마르크스레닌의 저작들을 읽었고, 1927년에 입당하였다. 1932년에 귀국하여 베이징중파대학(北京中法大學)에 재직하다가, 1937년에 상하이로 이주하여 중국고대문자학 연구에 종사하였다. 국공내전기간에 문물상점과 카페를 열어 문물을 보존하는 한편, 공산당의 연락 거점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1949년 화둥연구원(華東硏究院) 원장을 맡았고, 1949년 상하이가 해방된 후에는 상하이시 과학문화 사업을 관할하였으며, 상하이에서 중국과학원 화둥판사처 주임, 상하이문물관리위원회 주임위원, 고등교육처 부처장, 전관학술연구, 상하이박물관과 상하이도서관 주건 등을 맡았다. 또한 상하이역사학회와 상하이역사연구소를 세웠다. 1955년 중국과학원 제1차 학부성립대회에서 철학사회과학 학부위원으로 선출되었다.

대표 성과로서, 《中國的奴隸制和封建制》, 《殷代社會生活》, 《周族的氏族制與拓拔族的前封建制》, 《西周與東周》, 《中國的封建領土制和地主制》 등이 있다.

 

71. 런졘수(任建樹)

상하이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연구원. 중국현대사 전공. 천두슈(陳獨秀) 전문가.

1980년대 말 《陳獨秀傳》상권을 발표하였다. 그는 천두슈 관련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중국 각지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안후이, 쓰촨, 광둥 등지 도서관에서 자료를 확보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해서 확보한 풍부한 사료적 바탕 위에서, 《大傳》을 발표하였다.

 

 

72. 런나이챵(任乃强, 1894-1989)

쓰촨 난충(南充) 출생. 근대 티베트학 선구자 중의 일 인. 저명 민족사학자. 쓰촨성 최초 경제학자, 역사학자의 일 인.

충칭대학(重慶大學), 화시의과대학(華西醫科大學), 쓰촨대학(四川大學)의 교수를 비롯하여 중국민족연구회 이사, 중국민족사학회 고문, 쓰촨민족학회 고문, 쓰촤성사회과학원 특약연구원 등을 역임하였다.

1932년에 발표한 《西康圖經》(境域, 地文, 民族 篇의 3권)은 크게 주목 받아, 당시 중국 내 티베트학 연구를 고무시켰다. 또한 쓰촨대학 교수로 임용된 후(1946년), 런나이챵은 국내 티베트학을 촉진하기 위해 국내외 학자들을 모아 ‘캉짱연구사(康藏硏究社)’라는 티베트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민간단체를 조직하고 이사장으로 선출되었으며 《康藏硏究月刊》의 주편을 맡았다. 《캉짱연구월간》은 재정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1949년 9월까지 총 29期가 간행되어 티베트 관련 연구와 티베트전적을 번역하여 게재함으로써, 훗날 티베트학 연구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57년 이후 우파로 분류되어 고초를 겪으면서도 수많은 연구성과를 남겼다. 1978년 복권된 후에 발표한 쓰촨 짱구(藏區)에 대한 연구성과는 쓰촨 짱구 등지의 경제발전에도 공헌하였다.

대표적 연구 성과로서, 《西康禮記》, 《西康詭異錄》, 《西康圖經》, 《康藏史地大綱》, 《<西康政敎史鑒>校註》, 《英藏漢文對照康藏全圖》, 《川康藏農業區劃意見》, 《川邊歷史資料選編》 등이 있다.

 

73. 천중몐(岑仲勉, 1886-?)

광둥 순더현(順德縣) 출생. 고증학자.

시베이(西北) 사지학자(史地學者)인 리원톈(李文田)의 고향이기도 한 순더현에서 태어난 천중몐은 청대 시베이사지학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912년 베이징고등전문세무학교(北京高等專門稅務學校)를 졸업한 후 상하이 강해관과 광둥 재정청 등에서 재직하면서 여가시간에 식물 명실 고증이나 중외사지(中外史地) 고증을 하였다. 그가 1934-35년에 상하이 지난대학(暨南大學) 비서겸 문서주임으로 재직하면서 쓴 《佛游天竺記考釋》(1934)는 사학계로부터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그는 특히 석각고증에 뛰어나 碑文으로서 史實을 고증하였다. 또한 청대 금석학자들이 석각을 과신하여 史實을 편향적으로 이해했던 것을 교정하여, 객관적으로 비문의 가치를 논증하였다. 또한 바이쥐이(白居易) 문집 정리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밖에 직관전제(職官典制) 고증, 지리 고증 방면에도 많은 성과물을 남겼다. 중외사지연구는 특히 시베이 사지 방면에 여러 성과를 남겼다.

주요 연구성과로서 《隋唐史》, 《黄河變遷史》, 《府兵制度研究》, 《西周社會制度問題》, 《兩周文史論叢》, 《墨子城守各篇簡注》, 《西突厥史料補闕及考證》, 《突厥集史》, 《中外史地考證》등이 있다.

 

74, 쟝다춘(蔣大椿, 1940-)

안후이 우웨이현(無爲縣) 출생. 중국사학이론, 중국근현대사학사 전문가.

현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 사학이론연구실 주임연구원이자, 중국사회과학연구원 연구생원 교수, 박사지도교수이며, 《史學理論硏究》의 부주편과 중국사회과학연구원 고급전업직무평심위원회 사학평위, 근대사위원이다. 그 외 화둥사범대학(華東師範大學), 안후이대학(安徽大學), 안후이사범대학(安徽師範大學) 교수, 중국사학회의 이사와 사학이론연구분회 부회장, 중국현대문화학회 이사 등을 겸직하고 있다.

1963년 안후이대학(安徽大學) 정치계에서 역사학 전공으로 졸업하였다. 1966년 중국과학원 근대사연구소 사학개론을 전공하여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로 중국사학이론과 근현대사학사를 연구하였다. 최근에는 국가사회과학규획중점항목인 <中國近代史學理論發表> 과제 연구를 주관하고 있다.

주요 연구성과로서, 《唯物史觀與史學》, 《歷史主義與階級觀點硏究》, 《中華民族傑出人物傳》(공저), 《歷史學的發展趨勢》(공저), 《馬克思恩格思歷史科學》(주편), 《歷史硏究方法論集》(주편) 등이 있다.

 

75. 톈쥐졘(田居儉, 1934-)

지린 솽랴오(雙遼) 출생. 중국사, 인물사.

1059년 지린대학(吉林大學) 역사학계를 졸업하고, 모교에 임용되었다. 1976년 중국과학원 철학사회과학부에서 재직하였고, 《歷史硏究》 주편과 《中國社會科學》 부총편 등을 역임하였다. 1992년부터는 當代中國硏究所로 옮겨가 제1회 연구실주임 겸 《當代中國史硏究》 주편을 역임하였다. 현재 당대중국연구소연구원, 학술위원회 고문, 중국사학회 이사, 중화인민공화국국사학회 상무이사를 맡고 있다. 정부특수진첩을 수여받았다.

주요 연구성과로서 《春泥集》, 《亂世風雲》, 《李煜傳》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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