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학 지식인(2)

조회 수 3620 추천 수 0 2012.05.28 04:32:23

16. 바이빈(白濱, 1936-)

산시(山西) 핑딩(平定) 출생. 서하학(西夏學) 전문가.

1961년 중앙민족학원 역사계를 졸업하였고, 중국사회과학원 민족연구소 연구원, 닝샤대학 겸직교수를 역임하였다.

연구성과로서《元吳傳》, 《黨項史硏究》, 《尋找被遺忘的王朝》, 《文海硏究》(공저), 《西夏文物》(공저), 《天盛律令譯註》(공저), 《俄藏黑水域文獻》(공편) 등이 있다.

 

 

17. 푸이링(傅衣凌, 1911-1988)

푸졘 푸저우 출생. 중국 사회경제사의 기초를 세운 주요 인물 중 일인. 명청경제사 전문가.

원명 자린(家麟), 필명 슈슈성(休休生). 1929년 사립 푸졘학원 경제계 입학, 1930년 샤먼대학 역사계로 전과하고, 동창인 천샤오쟝(陳啸江)과 역사학회를 조직하였으며, 《史學專刊》의 편집, 출판을 책임졌다. 1935년 일본 호세이대학(法政大學) 연구원에 유학하여 마츠모토 준이치로(松本潤一郞)로부터 사회학을 배우던 중, 중일관계가 악화되어 1937년 귀국하였다. 셰허대학(協和大學) 교수, 푸젠학원(福建學院) 부교수, 푸젠성연구원(福建省硏究院)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 겸 문사조(文史組) 조장), 샤먼대학(廈門大學)의 역사계 주임, 역사연구소 소장, 부교장, 문과학술위원회 주임, 고적정리위원회 주임, 박사지도교수와 中國科學院 역사연구소의 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그 외 중국사학회 이사, 중국경제사학회 부회장, 푸젠성 역사학회 회장, 일본 교토대학 인문과학연구소 객좌교수 등을 역임했다.

푸이링은 중국봉건사회의 장기 정체 문제에 대한 관심 속에서 명청시대 사회경제사를 연구하여, 사회사와 경제사를 결합시켜내었다. 그는 대학교육에 종사하기 전 푸젠성 은행경제연구실 편집과 주임으로 일하던 때 발견했던 명대가정년간에서 민국기에 걸친 민간계약 문서를 분석하여 《福建佃農經濟史叢考》를 저술했다. 이것은 중국 최초의 민간계약문서를 연구한 사회경제사 저작일 뿐 아니라, 중국 사회경제사의 토대를 세운 연구성과이기도 하다. 그밖에 중국봉건사회탄성론, 향족론(鄕族論), 중국자본주의맹아론 등에 대한 견해를 제출하였다.

주요 저작으로《福建佃農經濟史叢考》, 《明淸時代商人及商業資本》, 《明代江南市民經濟初探》, 《明淸農村社會經濟》, 《明淸福建社會與鄕村經濟》, 《中國通史參考資料》第7冊(主編), 《明淸社會經濟變遷論》, 《明淸封建土地所有制論綱》, 《傅衣凌治史50年文編》 등이 있다.

 

18. 쉬중수(徐中舒, 1898-1991)

선진사(先秦史) 전문가. 고문자, 문헌학자.

칭화대학(淸華大學) 연구원 국학문(國學門)에서 왕궈웨이(王國維), 량치차오(梁啓超) 영향을 받으며 수학하고, 1926년에 졸업하였다. 칭화대학 국학문 재학 중에 왕궈웨이로부터 “신사학”에 대한 깊은 영향을 받았고, 이후 자신의 연구에서 고문자학, 민족학, 사회학, 고전문학과 역사학을 결합하여 왕궈웨이가 수립했던 “이중증거법(二重證據法)”을 “다중증거법(多重證據法)”으로 창조적으로 발전시켜냈다.

푸단대학, 지난대학, 베이징대학의 교수, 중앙연구원 역사어언연구소 연구원 등을 역임했고, 쓰촨대학 역사계에서 1937년부터 말년까지 교수를 지냈다. 그 외,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에 서남박물관 관장, 쓰촨박물관 관장, 중국과학원 철학사회과학원 학부위원, 국무원 고적정리소조 고문, 쓰촨성역사학회 회장, 중국선진사학회(中國先秦史學會) 이사장, 중국고문자학회 상무이사, 중국고고학회 명예이사 및 《中國大百科全書․中國歷史》 핀집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대표적 연구성과로서 《殷周文化之蠡測》, 《甲骨文字典》, 《木蘭歌再考》 등이 있다.

 

19. 스진보(史金波, 1940~)

허베이 가오베이디엔(高碑店) 출생. 고대 서하문사(西夏文史) 전문가.

1962년 중앙민족학원(中央民族學院) 어문계를 졸업하고, 1966년 중국사회과학원민족연구소에서 서하문(西夏文)으로 학위를 취득했다. 민족연구소 부소장, 중국민족고문자연구회 회장, 중국민족사학회 상무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중국사회과학원 학술위원회 위원, 민족연구소 연구원, 연구생원 교수, 박사지도교수 겸 중국사회과학원 서하문화연구소 주임과 중국민족고문자연구회이사회 고문, 중국서남민족학회 부회장, 닝샤대학 겸직교수 등의 직을 맡고 있다.

그는 西夏文史, 民族史學, 民族學 영역의 연구에서 다수의 연구성과를 남겼다. 그 중 대표적 저술로서, 《西夏文化》, 《西夏佛敎史略》, 《中國少數民族文庫》, 《類林硏究》(공저), 《中國珍稀法律典籍集成》(중 1), 《中國活字印刷術的發明和早期傳播-西夏和回鹘活字印刷術硏究》(공저), 《西夏天盛律令》(공저), 《西夏用兵史話》(공저) 등이 있다.

 

20. 푸러청(傅樂成, 1922-1984)

산둥 랴오청(聊城) 출생. 타이완의 저명 사학자. 진한사(秦漢史) 전문가.

1945년 국립서남연합대학 역사계 졸업, 1956년에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48년에 국립허난대학 조교로 초빙되었고, 후에 타이완으로 이주했다. 1949년 10월부터 국립타이완대학 총장비서, 역사계 조교, 강사, 부교수, 교수 등을 역임했고, 타이완대학 역사연구소 박사반과 진한사연구실(秦漢史硏究室)에서 교학하였다. 그 외, 중싱대학문학원(中興大學文學院) 원장을 겸직하였다.

그는 중국 진한, 수당사 연구의 기초를 세웠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사학논저는 영어, 일어, 한국어 등으로 번역되었고, 타이완, 홍콩, 일본, 한국 및 동남아시아 국가 대학생들의 중국사 관련 필독서가 되었다.

푸러청 사후 타이완대학, 중싱대학, 타이완사학회는 연합하여 기금을 모아 “푸러청교수장학금”을 세웠다. 타이완대학은 푸러청이 생전에 이끌었던 진한사연구실을 “푸러청교수기념연구실(傅樂成敎授紀念硏究室”로 개명하여 그를 기념하였다.

대표저서로서 《中國通史》가 있는데, 특히 타이완사학계에 매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 외 《秦漢史論文集》, 《隋唐五大史》 등이 있다.

 

 

21. 푸전룬(傅振倫), 1906-1999)

허베이 신허(新河) 출생. 사학자, 방지학자, 박물학자이자, 중국 당안학의 대가.

자 웨이번(維本). 1929년에 베이징대학 역사계를 졸업하였다. 베이징대학, 베이핑대학여자문리학원(北平大學女子文理學院), 둥베이대학(東北大學) 역사계, 창바이사범학원(長白師範學院) 사지계(史地系) 등을 거쳐 1949년 이후 중국역사박물관 연구원 겸 중국런민대학 역사당안계 교원 등을 역임하였다. 그 외 중국박물관학회, 둔황투르판학회 등의 명예이사를 역임했고, 中國大百科全書出版社 方志組, 《四庫全書存目叢書》, 《續四庫全書書目提要》등의 고문을 맡았다.

푸전룬은 1929년 베이징대학 졸업 후 베이징대학연구소 국학문에서 교직을 맡으면서 주시쭈(朱希祖) 등과 함께 청대 내각대고당안(內閣大庫檔案) 정리사업에 참여했다. 1931년에는 베이징대학 교수인 마헝(馬衡), 류푸(劉復) 등이 서북과학고찰단이 수집한 문사자료들을 연구할 때, 푸전룬은 이 간독자료들을 등기, 정리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이를 통해 그는 역사당안을 체계적으로 정리해보는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1940년대 초에 당시 준비 중이던 국사관의 편찬간사를 맡아 중일전쟁 이래 사료들을 수집, 정리하는 일을 하였다. 또한 국가당안관 준비사업에 참여하여, 1941년 《全國檔案館組織條例》5장 21조의 입안을 책임지고, 전국의 체계적 당안사업조직에 거시적 발전계획을 세웠다. 그밖에 대학에서 교직생활 중에 여러 당안 관련 과목을 개설하여 가르쳤으며, 당안사(檔案史)의 체계적 연구, 당안과 史志의 관계, 당안관학, 역사당안정리방법, 문서당안사업의 과학적 규범 등 당안 관련 연구 및 번역을 남겼다. 이는 중국 당안학의 초창기에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 특히 그의 당안학관과 당안교육, 당안학술과 서구의 당안 개념의 도입 등은 중국 당안관의 근대화와 전문화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대표적 연구성과로서 《中國方志學通論》, 《博物館學槪論》, 《公文檔案管理法》 등이 있다.

 

 

22. 푸상원(傅尙文, 1921-1994)

산둥 랴오청(聊城) 출생. 허베이대학의 저명 교수. 중국현대사연구의 개척자 중의 한 사람이자, 《歷史敎學》의 창간자다.

1940년 베이징대학 국문계에 입학하였는데, 중궈대학(中國大學) 법률계로 전과하여 1945년에 졸업하였다. 1940년대에 베이징4중과 톈진 3중의 역사교원 및 부딩사범대학(保定師範大學)의 강사, 허베이성정부의 역심(譯審), 화베이일보(華北日報) 주필 등을 맡았고, 1950년에 톈진지식서점(天津知識書店)의 부총편을 맡았다. 1951년에 양성마오(楊生茂), 리광비(李光壁) 등과 함께 중화인민공화국 최초의 역사전문잡지인《歷史敎學》을 창간하였다. 1952년 톈진사범학원(天津師範學院)에서 역사계 부주임과 주임을 하면서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에서도 일하였다. 허베이성 역사학회 부회장, 중국현대사학회 상무이사, 중공당사학회 상무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저작으로 《中國近代史》, 《淸末新軍編練沿革》, 《南昌起義資料》, 《抗日戰爭時期晉察冀邊區財政經濟史資料選集》, 《晉察冀抗日根據地財政經濟史稿》등이 있다.

 

 

23. 스장루(石璋如, 1902-2004)

허난 옌스(偃師) 출생. 은허(殷墟) 발굴에 참여했던 중국 저명 갑골문 학자이자 고고학자이자, 타이완 중앙연구원의 원사(院士).

1932년 허난중산대학(河南中山大學) 문학원 졸업, 이후 중앙연구원에서 고고학을 공부하고 조교, 연구원 등을 역임하였다. 1948년 말, 중앙연구원 역사연구소와 함께 타이완으로 건너간 이후 계속해서 교수, 석사․박사지도교수를 맡았다.

스장루의 첫 고고학 발굴경험은 고고학자이자 역사어언연구소 고고조의 주임인 리지(李濟)가 지휘하던 은허발굴사업의 제4차 발굴에 참여했던 것이다. 그는 이후 리지가 주도한 은허발굴에 계속 참여하였고, 제15차 발굴은 그가 직접 주도하였다. 은허발굴에 총 12차례 참여했던 스장루는 은허발굴의 최다 직접 참여자로서 ‘살아있는 당안’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1948년 타이완으로 이주 후에도 은허건축기지연구와 은허묘장연구를 진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륙의 고고학발굴사업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이 류이완(劉一曼)이 쓴 〈殷墟花園莊東地甲骨坑發掘記〉(《文物天地》게재)를 주목하여 바로 〈殷墟大龜版五次三地出土小記〉(《安陽文獻》11, 1995)를 써서 타이완 학계에 소개해주기도 하였다.

대표적 연구서로서《殷墟建築遺存》, 《殷墟墓葬》, 《考古年表》, 《中國的遠古文化》등이 있다.

 

 

24. 사오쉰정(邵循正, 1909-1972)

푸젠 허우관(侯官, 현 푸저우시) 출생. 저명 몽고사학자.

자 신헝(心恒). 칭화대학 역사계주임, 베이징대학 역사계 교수, 중국근대사교연실 주임 등을 역임하였다.

1926년 푸저우 셰허대학(協和大學)에 입학하였으나, 그해 가을 국립칭화대학으로 옮겨 정치학계에서 국제법과 국제관계를 전공하였다. 1930년 칭화대학 연구원에 입학, 전공을 역사로 바꾸었다. 중불월남관계에 관한 석사학위논문을 제출하였는데, 이것은 칭화대학연구원 졸업논문총간에 수록되었다. 1934년 유럽유학을 떠나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폴 펠리오(Paul Pelliot, 1878~1945)의 지도로 몽고사를 전공하였다.

1936년에 귀국하여, 칭화대학 역사학계에 강사로 초빙되어 몽고문을 강의하였다. 중일전쟁 발발 후 창사임시대학, 쿤밍서남연합대학에서 역사학계 전임강사, 부교수를 거쳐 교수로 임용되어 몽고사와 페르시아어 및 중국근대사를 가르쳤다.

1945년 천인커(陳寅恪), 훙쳰(洪謙), 쑨위탕(孫毓棠), 선유딩(沈有鼎)과 함께 영국문화위원회로부터 초청을 받아, 옥스퍼드대학 방문교수로서 몽고사를 연구하였다. 1956년에 웡두젠(翁獨健), 한루린(韓儒林)과 함께 중화인민공화국 몽고사전문가 대표로서 모스크바에 가서, 몽, 중, 소 3국 역사학자 합작하여 《蒙古通史》를 집필하기 위한 연구계획의 초안을 세움으로써, 국제학술문화교류를 촉진하였다.

1949년 이후에는 중국의 대외관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중국 국내정치, 특히 중국자산계급 문제 연구를 개척하였다. 그는 양무파의 리룽장(李鴻章), 장즈둥(張之洞), 성솬화이(盛宣懷)에 대한 연구를 강조하였고, 양무파가 세운 민용기업에 대한 연구도 하였다. 문혁기간 박해를 받아 병에 시달리면서도 《元史》교점을 주관하였다.

대표적 연구성과로서 〈中法越南關係始末〉, 《中國歷史槪要》(졘보짠[翦伯贊], 후화[胡華] 와 공저), 《中國史綱要》(천칭화[陳慶華]와 공저), 《邵循正歷史論文集》 등이 있다.

 

 

25. 쑹스탕(宋士堂, 1934-)

산둥 펑라이(蓬萊) 출생.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

1949년 산둥대학 역사계를 졸업하고, 후에 중공중앙정치연구실, 마르크스레닌주의연구원(馬列主義硏究院)과 광명일보(光明日報)에서 일하였다. 1979년부터 현재까지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에서 근무하였고, 중화염황문화연구회(中華炎黃文化硏究會) 이사다.

주요 연구성과로 《孫中山宋慶齡社會主義思想論》, 《社會主義思想史》(공저) 등이 있다.

 

 

26. 야한장(牙含章, 1916-1989)

간쑤 린샤(臨夏) 출생. 사회학자, 민족학자. 티베트학과 민족종교 전문가.

필명 항루(章魯), 쯔위안(子元). 중국민족이론연구회 회장, 중국민족연구학회 이사장, 중국종교학회 상무이사, 중국지방지 지도소조 조원 등을 역임했다.

1936년 라브랑사원(拉卜楞寺)과 라룽드레풍사원(拉隆哲蚌寺)에서 티베트불교와 장족(藏族)의 역사를 연구하였다. 1938년 샤베이공학(陝北公學) 분교에 입학하여 학습하고,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그 이후부터 티베트학 연구와 민족종교문제 연구에 종사하였다. 그의 티베트연구는 티베트와 중화인민공화국이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이었다.

1958년 중국과학원 민족연구소 부소장으로 임명된 후, 중화인민공화국의 50여 개 소수민족의 《簡史》와 《簡志》의 편사를 맡았다. 당시 학술계는 한민족 형성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전개되었는데, 야한장 또한 민족형성이라는 문제에 중점을 두고서 민족연구를 하였는데, 그 성과물이 《民族形成問題硏究》(1980)다. 1987년에는 국가 “七五” 중점출판항목인 《中國無神論史》를 편사하였다. 그 외 주요 연구성과로서 《達赖喇嘛傳》, 《班禪額爾德尼傳》 등이 있다.

 

 

27, 뤼쓰몐(呂思勉, 1884-1957)

쟝쑤 창저우(常州) 출생. 고대사 전문가, 신사학자. “사학대사(史學大師)”

자 청즈(誠之). 쑤저우 둥우대학(東吳大學), 상하이 광화대학(光華大學) 중문계, 역사계 교수 겸 계주임, 화둥사범대학(華東師範大學) 역사계 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12세부터 부모와 스승의 지도로 사서(史書)를 읽기 시작했고, 16세에 고사전적(古史典籍)을 독학하였다. 그는 건가학파(乾嘉學派)의 전통을 비판적으로 계승하였는데, 어려서부터 습득했던 국학(國學) 기초는 훗날 그의 사학 사상의 학술적 연원이 되었다.

그는 량치차오의 ‘신사학’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아, 진화사관에 입각하여 《白話本國史》를 집필하였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白話本國史》는 중국 최초의 백화문으로 집필된 중국 통사다. 그는 이 책에서 중국 역사의 기원을 삼황오제(三皇五帝)에 두고서, 수인씨(燧人氏)로 대표되는 어작시대(漁猎時代), 복희씨(伏羲氏)로 대표되는 유목시대, 신농씨(神農氏)로 대표되는 농경시대로 나누어 인류사회가 야만에서 문명으로 진보하였다고 인식하였다. 즉, 그는 인류사회가 끊임없이 진화하는 가운데 발전한 것임을 증명해냄으로써, 상고시대를 단계적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이후 오랫동안 대학교재와 청년들의 필독서가 되었으며, 1920,30년대 중국 사학계에 극대한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 연구성과로서 《白話本國史》, 《史籍與史學》가 있고, 그 외 《呂思勉文集》, 《先秦史》, 《秦漢史》, 《兩晉南北朝史》, 《隋唐五代史》, 《先秦學術槪論》, 《理學綱要》, 《中國民族史》, 《中國制度史》 등이 있다.

 

 

28. 뤼전위(呂振羽, 1900-1980)

후난 우강(武岡) 출생. 중국 마르크스주의사학 성립의 중요 공헌자, 사학이론가. “중국사회사논전(中國社會史論戰)”의 중요 참여자.《新東方》창간인.

본명 뎬아이(典愛), 자 싱런(行仁), 필명 천광(晨光), 정위(正于), 쩡위(曾與). 중궈대학(中國大學), 민궈대학(民國大學), 차오양대학(朝陽大學), 중공화중국당교(中共華中局黨校)), 중앙마르크스레닌주의연구원(中央馬列主義硏究院)에서 교직을 맡았고, 중공중앙역사문제연구위원회 위원, 다롄대학(大連大學) 교장 겸 당위서기, 둥베이인민정부 문화교육위원회 부주임 겸 둥베이인민대학(東北人民大學) 교장과 당위서기, 중국과학원 철학사회과학부 위원, 중앙당교 교수 및 역사교연실 고문, 중앙군위 고문, 전국인민대표대회 민족위원회 위원, 국가민족사무위원회 위원, 민족역사지도위원회 위원, 중국사회과학원 고문 등을 역임하였다.

공업이 나라를 구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후난대학에 입학하여 기계공학을 전공하였다. 제1차 국공합작이 결렬된 후 마르크스주의를 체계적으로 학습하였다. 경제학과 철학을 연구하여 중국의 현실과 결합시키고자 하였고, 해외 각국의 정치경제발전의 규칙과 특징을 탐색하였으며, 중국사회성질과 사회사문제 논전에 참가하였다. 그는 고고학 발굴 성과와 고문헌의 신화와 전설을 바탕으로, 은대(殷代)는 노예제단계, 서주(西周)는 초기봉건제 단계임을 논증하였다. 또한 아편전쟁 이후의 중국은 반식민지반봉건사회라고 규정하였다. 그 외 명말부터 아편전쟁 이전 시기를 ‘자본주의맹아’기로 주장하였다.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항일활동에 종사하면서, 30년대 이래 중국사회사문제 논전을 총결하여 당시 중국사 연구의 문제를 비평, 논술하였다. 이것은 후에 《中國社會史諸問題》(1942년)로 출판되었다.

그는 평생에 걸쳐 마르크스주의 사관을 견지하였다. 중국역사의 발전 단계를 원시사회, 노예사회, 봉건사회와 근대반식민지반봉건사회로 파악하여 경제사, 사회통사, 사상사, 민족사 등 방면에 체계적 연구성과를 남김으로써, 중국 마르크스주의사학의 건립 및 민족사 연구에 크게 기여하였다. 마르크스주의사관에 입각하여 중국통사를 저술한《簡明中國通史》와 중국의 각 민족사를 저술한 《中國民族簡史》를 비롯하여 《史前期中國社會硏究》, 《殷周時代的中國社會》, 《中國政治思想史》, 《中國社會史諸問題》, 《史學硏究論文集》, 《史論集》, 《呂振羽史論選集》, 《中國歷史講稿》 등의 중요 연구성과를 남겼다.

 

 

29. 뤼수번(呂樹本, 1924-)

저장 신창(新昌) 출생. 중국현대사 전공.

항저우 즈장대학(之江大學) 상학원 공상관리계 졸업. 저장성 간부학교 교육 간사, 저장사범학원(浙江師範學院) 정치계 조교, 강사를 거쳐, 항저우대학 역사계 부교수를 역임하였고, 1989년 4월 퇴임하였다. 중국혁명사, 중공당사, 중국현대사, 저장(浙江) 지방사(현대사 부분) 등을 개설하여, 주로 본과생 교학과 중국현대사 석사를 양성하였다.

연구성과로서 《中國現代史稿》, 《浙東革命根據地》, 《浙東抗戰春秋》, 《浙江新四軍歷史人物傳》등이 있다.

 

 

30. 란광룽(冉光榮, 1938-)

충칭 출생. 지방사 전문가. 쓰촨대학 교수.

쓰촨대학(四川大學) 역사계를 졸업하고(1959년), 쓰촨대학 역사계에서 선진사(先秦史)를 전공하여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1962년). 쓰촨대학 역사계 주임, 역사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하였고, 현재 쓰촨대학 역사문화원 지방사 전공 박사생 지도교수다. 2000년에 쓰촨대학 서부개발연구원 학술위원을 맡았다.

1950년대부터 민족조사에 참가하였고, 최근에는 주로 장구(藏區)의 현황과 사회발전을 연구하는 데 종사하여, 국가교육위원회의 과제인 “강구개발과 현대화(康區開發與現代化)”를 완성하였다.

연구성과로서 《四川藏傳佛敎調査硏究叢書之一: 藏傳佛敎寺院資料選編》, 《羌族史》, 《近代康區檔案資料選編》, 《四川藏傳佛敎調査硏究叢書之二: 宗敎政策文件及硏究論文, 報告選編》, 《中國藏傳佛敎寺院》, 《中國藏傳佛敎史》, 《變易與新生: 藏傳佛敎》,《四川藏區開發之路》(主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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