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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청시기 진사의 지역별 분포
자료출처: 梅新林, 『中國文學地理形態與演變』(復旦大學出版社, 2006)
고대 문인의 인생은 대체로 ‘讀書->科擧->入仕’의 경로를 밟는다. 학문을 추구하는 것은 문인들의 기본적인 지적 축적의 출발점이자, 관직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 된다. 학문을 한다고 해서 다 문학가의 항렬에 진입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학가는 반드시 지식에 대한 학습과 지식 축적의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한 제도로서의 중국 고대 교육은 크게 관학·사학·서원 3개 유형으로 나뉜다. 시간적으로 볼 때, 관학은 중단됨이 없이 지속되었고 사학은 춘추전국시대에 시작하여 양한, 위진남북조를 거쳐 지속적인 발전을 보이다가 당대 이후 점점 쇠락하면서 서원으로 대체되어갔다. 공간적으로 볼 때, 관학은 도읍지의 태학을 중심으로 하다가 점차 지방 관학으로까지 확대되면서 ‘향촌->도시->도읍’이라는 고정된 이동 패턴과 도읍지를 핵심으로 한 도시중심의 패턴을 동시에 보인다. 이처럼 관학을 통해 '학문->과거->출사'의 경로를 거치며 형성된 문인들의 지역적 이동을 보면, 대체로 외읍(外邑)에서 도읍지로 주변에서 중심으로 이동하는 형태를 보인다. 그러나 사학은 이와 달리 행정단위에 따라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사학의 장소나 스승이 계시는 지역에 따라 형성된다. 한편, 서원은 대부분 산림 속에 있기 때문에 특히 관학의 지역으로부터 상당히 멀다. 이와 같이 관학·사학·서원은 고대 문인군체의 학문 경로의 장소이자 지역 이동의 중요한 요인이 된다.
이러한 3대 교육기관을 통해 학문을 닦은 문인들이 행하는 다음 단계는 ‘과거’이다. 과거제도는 수나라 때부터 시작하여 청나라 말에 폐지되기까지 약1,200여 년 동안 중국 고대 문인군체의 중요한 출사의 경로가 되었다. 수나라 양제 때 과거제도와 진사과가 설립되었고, 그 후 진사에 오른 사람은 청 말에 이르기까지 총106,310명에 달한다. 이를 시대별로 보면, 1위 송대(36,131명), 2위 청대(26,847명), 3위 명대(24,878명), 4위 당대(7,516명), 5위 금대(6,601명), 6위 요대(2,494명), 7위 원대(1,165명), 8위 오대(678명) 순이다.(『中國文學地理形態與演變』 441-442, 463-464쪽 참고)
과거제도는 수나라때 제도화를 거치면서 당나라 때 과거의 장소와 유관 활동은 주로 장안과 낙양에서 진행되었다. 특히 송나라의 이학과 서원 등의 학술적 풍토로 인해 송나라 때(36,131명)는 당나라 때(7,516명) 보다 진사의 수가 훨씬 급증한다. 지도 상단에 제시한 표(본문에서 제시한 수치와 차이가 나는 것은 일부 관적이 명확하지 않은 사람이 있기 때문임)에 근거하여 명나라 때 진사의 지역적 분포를 보면, 절강(3,697)->강서(3,114)->강소(2,977)->복건(2,374)->산동(1,763)->하남(1,729)->하북(1,621)->사천(1,369)->산서(1,194)->안휘(1,169)->호북(1,009) 등의 순이며, 청나라 때는 강소(2,949)->절강(2,808)->하북(2,674)->산동(2,270)->강서(1,919)->하남·산서(1,721)->복건(1,371)->호북(1,247)->안휘(1,119)->섬서(1,043)->광동(1,011) 등의 순을 보인다.
대체로 명·청시기 모두 절강·강소·강서·산동·하북·하남·복건 일대에 집중해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명·청시기 모두 강소·절강·강서 등 장강일대가 우세하며, 북쪽에는 산동·하북·하남 지역에, 남쪽에는 복건·광동 일대에 각각 분포해있다. 그러나 명초에 남경을 도읍으로 하다가 영락연간 북경으로 옮겼지만 여전히 장강유역에 월등이 많이 분포하고, 청대에도 북경을 수도로 정했지만 여전히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는 문화발전의 축적과 관성의 작용으로 인해 여전히 남방이 상대적으로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 본 보고서의 내용은 중국인문사회연구소의 지식생산이며 인용 시 자료원을 명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