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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제자 연구’
자료출처: 中國知網(CNKI)
위 지도는 中國知網(CNKI)에서 ‘孔子弟子’를 전체문헌 속에서 ‘편명’으로 검색(2016.12.05)한 결과 총141편을 토대로 하여 그린 것이다.(서술한 주요 내용은 하단의 참고문헌을 참고)
공자제자에 관한 기록이 실린 문헌으로는 『사기·중니제자열전(史記·仲尼弟子列傳)』, 『사기·공자세가(史記·孔子世家)』, 『사기·유림열전(史記·儒林列傳)』 및 『공자가어(孔子家語)』·『춘추번로(春秋繁露)』·『논형(論衡)』·『염철론(鹽鐵論)』·『신어(新語)』·『설원(說苑)』·『신서(新序)』·『회남자(淮南子)』·『한서(漢書)』 등이 있다. 이 후 역사서 『수서·경적지』 『신당서·예문지』 『송사·예문지』 『명사·예문지』 『청사·예문지』의 경부(經部) 논어류와 자부(子部) 유가류 등에도 일부 자료가 보인다. 주요 연구 서적으로 야오융푸(姚永朴) 『역대성철학전후편(歷代聖哲學粹前後編)』, 쳰무(錢穆) 『선진제자계년고변·공문제자통고(先秦弟子系年考辯·孔門弟子通考)』, 장보쳰(蔣伯潛) 『제자통고·공자제자고(弟子通考·孔子弟子考)』, 리치쳰(李啓謙) 『공문제자연구(孔門弟子硏究)』 및 량차오밍(楊朝明) 『공자와 공문 제자연구』 등이 있다.
공자제자의 수에 대한 기록은 각 문헌마다 편차를 보인다. 『사기·공자세가』에는 공자는 시서예악을 가르쳤고 제자는 대략 3000명이며, 이 중 육예(六藝: 고대 6개 교육과목-禮·樂·射[활쏘기]·御[말타기]·書·數)에 통달한 제자는 72명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사기·중니제자열전』에는 77명이라고 한다. 77명 가운데 『논어』에 보이는 인물은 총27명이다. 그리고 주희 『논어집주』에서 주희가 공자제자라고 주를 단 사람은 총27명(유자有子·증자曾子·자하子夏·자금子禽·자공子貢·번지樊遲·자유子游·안회顔回·자로子路·자장子張·염유冉有·재아宰我·공야장公冶長·남용南容·자천子賤·염옹冉雍·칠조개漆雕開·공서적公西赤·신장申棖·원사原思·민자건閔子騫·염백우冉伯牛·무마기巫馬期·뢰牢·안로顏路·고시高柴·사마우司馬牛. 문헌에 따라 24명~27명이라고 함)이다.
주희 『논어집주』에 나온 27명의 출신지(주이존(朱彝尊)의 『공자제자고』 참고)를 보면, 노나라 출신 14명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위(衛)·진(陳)(각3명)->송(2명)->오(吳)·제(齊)·채(蔡)·변(卞)·남무성(南武城)(각1명) 순이다. 공자의 나이와 가장 많이 차이나는 제자는 자장으로 48살이 적었고 다음으로 증삼(46살), 자하(44살) 순이었다. 가장 차이가 적은 제자는 안로이며 6살이 적었고, 다음으로 자로(9살), 칠조개(11살) 순이었다. 공자의 제자들은 대부분 서인출신으로 정치적 지위나 경제적 자원이 없는 인물들이었다.
『논어』(『논어사전』 참고)에 출현하는 제자는 ‘공문십철(孔門十哲)’의 빈도가 상대적으로 높다.(이 밖에 자장·증삼도 많음) 자로가 76회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자공(58회), 염유(33회), 안연(32회), 자하(27회), 자유(12회), 중궁·재아(각11회), 민자건(6회), 염백우(2회) 순이다. ‘공문십철’은 공자가 제자의 장점과 특징을 4개(덕행·언어[외교사령]·정사·문학[시서예악]) 분과로 나누어 10명의 제자를 분류한 것이다. 덕행(德行)에는 안연(顔淵)·민자건(閔子騫)·염백우(冉伯牛)·중궁(仲弓), 언어에는 재아(宰我)·자공(子貢), 정사(政事)에는 염유(冉有)·자로(子路), 문학에는 자유(子游)·자하(子夏)이다.
공자제자에 대한 연구는 크게 세 시기로 나눠 볼 수 있다.
첫 번째 단계인 20세기 초-1949년 이전까지는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공자제자연구가 활발하지 않았다. 1912년 천한장(陳漢章) 「공문재전제자고(孔門再傳弟子考)」를 시작으로 쑨더쳰(孫德謙)의 「공자재전제자고」·「공자삼전재자고(孔子三傳弟子考)」 등은 공문재전제자와 그 후학들의 상황에 대한 간략한 고증의 글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 후 1922년 궈사오위(郭紹虞), 구졔강(顧頡剛) 등을 비롯하여 공문제자의 사상·학풍·학파 등 학술사상에 대한 연구(「論孔門學風只有務外主內兩派書」·「答郭紹虞‘論孔門學風只有務外主內兩派書’」)가 두드러졌다. 이어 후스(胡適) 『중국철학사대강·공문제자』에서는 학술사상과 효, 예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루었고, 쳰무 『선진제자계년고변·공자제자통고』와 장보쳰 『제자통고·공자제자』에서는 주로 공문제자의 생평과 사적에 대한 고증에 집중하였다.
두 번째 단계인 1950년-1978년은 공자제자연구가 비교적 활발하였지만, 주로 홍콩과 대만 지역에서 이루어졌고 중국은 상대적으로 정체기였다. 중국전통문화와 특히 증자·안회·자공·재아·자장 등 개별적인 제자 연구가 특징을 이루었다. 1949년 이전의 연구에 비해 공문 제자에 대한 심층적이고 다양한 고증과 분석의 글들이 나왔다.(차이런허우(蔡仁厚) 「공문제자지행고술(孔門弟子志行考述)」) 또한 사료를 토대로 안회의 사상·생평·연표 등에 대한 고증과 분석연구(황사오쭈(黃紹祖) 「안자연구」)도 대표적이다. 이 시기는 개별 제자에 대한 심층적인 사상적·고증적 연구가 진행되었다.
세 번째 단계인 1979년-2000년대는 공문제자연구의 번영기라 할 수 있다. 역시 대만, 홍콩이 주를 이루었지만 중국에서의 연구도 활기를 띠었다. 대표적인 저서로 리치쳰(李啓謙) 『공자제자자료회편』은 공자제자와 관련한 역대 사료를 모아 공문제자의 사상과 사적에 관한 자료를 집대성적인 연구이다. 가오좐청(高專誠) 『공자·공자제자』는 공문제자간의 사상적 차이 및 제자의 생평·사상·사료고증·사도관계·유학의 전승문제 등을 상세하게 연구하였다.
이상으로 볼 때, 연구내용은 전반적인 제자의 생평·사적 연구, 개별제자연구, 제자와 유학의 전승문제, 관련 사료의 집대성 연구가 주를 이루었고, 지역은 홍콩이나 대만에서 상대적으로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다음은 서두에서 밝힌 검색조건을 통해 중국에서 이루어진 학술논문(총141편)의 연구 상황에 대해 간략히 정리한다.
첫째, 학술논문 가운데 학위논문은 대체로 『공자가어』와 공자제자연구, 『논어』 속 제자의 형상, 공자제자와 노나라의 정치, 제자의 덕행과 정치의 상관성 등에 관한 내용이다. 둘째, 관건사는 공자제자·『논어』·노국정치·공자형상·제자분화·선진양한문헌·덕치파·『공자가어』·『사기』·사생관계·72제자·제자형상·군자·문답식(問對)·교육·진적(眞迹)·예악제도·안연·자로·자공·염옹(冉雍) 등이 주를 이루었다. 셋째, 논문이 발표된 기간물의 지역적 분포는 북경, 하남·산동, 상해, 호북, 하북, 요령·길림·감숙·광서 등 북방 지역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그리고 연구논문은 주로 2000년대 후반부터 상대적으로 많아졌다. 넷째, ‘공자제자’에 대한 연구논문이 수록된 학술지는 『장쑤교육』·『취푸(曲阜)사범대학』·『란저우대학학보』·『공자연구』·『공자학간』·『둥베이사범대학』·『제로학간(齊鲁學刊)』·『문예평론』·『노동대학학보(魯東大學學報)』·『國學』 등의 순으로 많았으며, 상대적으로 공자와 관련한 산동지역에 소재한 학술지가 많았다. 그러나 대학에서 발행하는 학술지인 ‘학보’가 반 이상을 차지한 점은 대학 내의 기간물이 지식생산의 주요 경로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사기·중니제자열전(史記·仲尼弟子列傳)』·『논어집주』
楊英紅, 「『論語』中孔子弟子硏究」, 福建師範大學(碩), 2012.
鄧國均, 「孔門五大弟子與孔子關係析論」, 浙江大學(碩), 2007.
* 본 보고서의 내용은 중국인문사회연구소의 지식생산이며 인용 시 자료원을 명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