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연구사업 > 지식지도
가오싱젠의 문학지형도
출처: 저자 작성
위 문학지형도는 가오싱젠(高行健)의 『靈山』, 『一個人的聖經』, 『論創作』, 『逍遙如鳥: 高行健作品研究』 및 국내 유관 학술자료를 토대로 그의 문학세계를 도식화 한 것이다.
1949년 이후 근 30년간의 중국 현대문학은 정치담론이 문학담론을 장악해오면서 문학의 본령을 찾을 수 없었다. 가오싱젠의 ‘망명(도망)’의 결심은 이러한 ‘문학의 불행’속에서 탄생하였다. 현재 화인 디아스포라작가들의 주요 네트워크는 북미와 타이완·홍콩 등을 거점으로 하고 있으며, 이러한 패턴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작가가 바로 가오싱젠이다. 현재 그는 출판·공연·강연·인터뷰 등의 방식을 통해 유럽과 북미 그리고 타이완·홍콩 등과 문학네트워크를 펼쳐나가고 있었다.
가오싱젠은 작가가 이념과 체제로부터 벗어나 차가운 시선과 거리두기를 유지해야 진정한 창작을 할 수 있으므로 작가는 ‘주의’에서 벗어나야한다고 강조한다(沒有主義). 그리고 그런 문학은 ‘차가운 문학(冷的文學)’이라고 명명한다. 차가운 문학이란 작가에게 있어 일종의 ‘생존’의 문학으로 사회나 집단에 의해 말살되지 않고 정신적인 자기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문학을 말한다.
가오싱젠은 ‘주의 없음’, ‘차가운 문학’이라는 개념을 통해 20세기 중국 현대문학은 각종 주의, 이데올로기 및 관련 창작 방법에 관한 논쟁의 늪에 빠져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문학창작은 본래 어떤 운동이나 집단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며, 작가 역시 독립적인 개체로서 정치적 집단에 예속되지 않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사회의 변두리에 서서 관찰하고 깨달아야 ‘차가운 문학’에 전념할 수 있으며, 그러한 차가운 관조와 시선으로 인류사회를 주시하고 드러내는 것이 문학의 본령이자 작가의 진실한 창작태도라는 것이다.
이런 문학 관념은 창작 속에서 잘 반영되고 있다. 그는 『영혼의 산』, 『나하나 만의 성경』에서 기존 소설의 인물 명명방식을 버리고 ‘인칭’으로 ‘인물’을 대체하였다. 실험적이면서 생경한 기법으로서, 한 명의 인물이 여러 개의 마스크는 보이는 일종의 ‘변검(變臉) 효과’를 드러낸다. 예컨대, 여행을 하고 있는 현실적인 인물 ‘나’는 여행 과정에서 정신적인 상상속의 ‘당신’을 만들어서 ‘나’의 대화 상대가 되게 한다. 이처럼 ‘당신’ 또한 ‘그녀’를 파생시켜 정신적 상상 속의 ‘당신’의 파트너가 되게 하며, 또 다시 ‘나’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다. 이러한 동일한 ‘자아’가 여러 차원으로 체험하는 방식의 언어 수법을 그는 ‘언어 의식(語言意識)’이라 한다. 이러한 ‘언어 의식’의 배후에 자리하는 ‘자아’는 다양한 내면의 의식을 이어간다. 그리고 중성적 혹은 제3의 시선을 등장시킴으로써 정치와 윤리, 사회와 습속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여러 개의 자아의식을 낳게 된다. 이처럼 가오싱젠이 주장하는 차가운 시선과 관조 및 거리두기 등의 창작 사유는 작품 속에서 인칭서술 방식으로 구현되고 있다.
가오싱젠이 200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서구 측에서는 반-중국 인사를 세움으로써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고, 또 이후 중국 측에서는 가오싱젠을 (제한적으로) 수용하여 중국의 문화위상을 드높이고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타이완·홍콩 등에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화인문학 작가들 역시 중국의 움직임을 견제하기 위해 가오싱젠의 문학적 ‘권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처럼 가오싱젠은 양안삼지의 문화 권력들이 쉽게 간과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닐 것이다. 때문에 가오싱젠을 통해 화인문학의 동향을 재조명해보는 것은 화인문학을 둘러싼 여러 장력들의 관계를 조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는 물론 화인문학의 새로운 출로 또한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 본 보고서의 내용은 중국인문사회연구소의 지식생산이며 인용 시 자료원을 명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