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샤오통(費孝通) 연구 지식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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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CNKI참고

 

   CNKI에서 페이샤오통의 편명으로 검색하고 검색한 결과에 페이샤오퉁의 주요주제를 추출하면 299개의 논문이 검색된다. 이 가운데 논문저자의 소속이 분명한 297개 논문의 제 1저자의 소속 기관의 소재지를 중심으로 페이샤오퉁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의 지형을 그려본 것이 위의 지도이다. 


  페이샤오통(費孝通 1910-2005) 은  1939년 <강촌경제>를 시작으로 <출산과 육아제도 生育制度>(1947년),  <향토중국 鄕土中國>(1947년), <향토중건 鄕土重建>(1948년), <다시방문한 강촌 重訪江村>(1956년) 등의 저서를 출판하고 인류학과 사회학 연구의 토대를 구축했다. 개혁개방 이후에는 현지조사를 수행하고 소수민족 지역의 연구에서 베이징과 상하이등의 대도시 사회연구도 진행했다. 촌락을 하나의 집체적 기업단위로 만들고 소도시를 중심으로 한 발전 전략을 담은 향촌기업 모델을 주창했다. 또한 중국 문화가 축적한 전통을 인류 문명의 공존에 도움이 되는 인류 자원으로 정련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1947년부터 칭화대학 사회학과에 근무하였으나 1952년 사회학과가 철폐되자 학술연구를 중단했다가 개혁개방후 사회학과 건립에 주력하고 '학이치용' 즉 지식인은 지식으로 사회에 보답하고 사회진보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며 많은 실용적인 정책과 구상을 쏟아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페이샤오통에 대한 중국의 연구는 어떠한 지형을 보여주고 있는가. 


위의 지도를 보면 페이샤오통에 대한 연구는 1997년부터 시작되어 그가 사망한 2005년 이후 점차 증가하였고 2020년과 2021년 특히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연구의 지역별 지형을 보면 북경 113, 강소 38, 호북 19, 상해 17, 운남 13, 광동 11, 천진 7, 사천 7, 길림 7, 감숙 7, 절강 5, 요녕 5, 섬서 5, 광서 5, 하남 4, 중경 4, 귀주 4, 흑룡강 3, 호남 3, 산동 3, 하북 2, 청해 2, 안휘 2, 미국 2, 강서 1, 복건 1, 해남 1, 영하 1, 신강 1, 대만 1, 한국 1, 일본 1 이며 산서와 서장은 연구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경이 압도적으로 많고 미국, 대만, 한국, 일본 등에서도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어서 페이샤오통에 대한 관심은 외부에도 확장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많이 연구한 기관은 북경의 중앙민족대학민족학원과 사회학학원(中央民族大学民族学与社会学学院(15편), 북경의  북경대학사회학과(10편), 북경의 중국인민대학 인류학연구소(7편), 북경의 중국인민대학사회학이론과 방법연구센터(中国人民大学社会学理论与方法研究中心)(7편), 강소의 소주대학사회학원(苏州大学社会学院(7편), 북경 중국사회과학원 사회발전전략연구원(6편), 상해의 상해대학사회학원(6편), 북경의 중국인민대학사회와 인구학원(5편), 북경의 중앙민족대학(4편), 북경의 중국예술연구원 예술인류학연구소(4편), 운남농업대학인류사회과학학원(4편), 강소성사회과학원(4편)으로 중앙민족대학과 인민대학에서 많이 연구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연구자 소속 기관의 성격으로 볼 때 페이샤오통에 대한 연구는 소수민족에 대한 연구, 농촌지역 발전과 관련된 연구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페이샤오통의 중국 민족과 농촌사회에 대한 인식은 중국민족의 국가와 정체성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중국의 민족을 규정하고 중국 문명의 보편성을 추구한 페이샤오통의 민족과 국가인식이 어떠한 기제로 중국내 영향을 끼쳤는가 그리고 그 구체적인 주장과 내용은 무엇인가에 대해 좀더 천착된 연구가 진행될 필요가 있으며 또한 중국내에서 페이샤오통이 어떻게 수용되었는가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본 보고서의 내용은 중국인문사회연구소의 지식생산이며 인용 시 자료원을 명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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