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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대 은사(隱士)의 지역적 분포
자료출처: 梅新林, 『中國文學地理形態與演變』, 復旦大學出版社, 2006
위 지도는 메이신린(梅新林)의 『中國文學地理形態與演變』(510-511쪽)의 자료를 토대로 중국 역대 은사의 지역분포를 작성한 것이다.
중국 고대에서 ‘은사’라는 명칭은 『장자·외편·선성(莊子·外編·繕性)』과 『순자·정론(荀子·正論)』에 가장 일찍 보인다.
“도가 세상을 일으킬 수 없고 세상이 도를 일으킬 수 없으니, 비록 성인이 산림 속에 숨지 않아도 그의 덕은 묻혀버린다. 이처럼 성인이 숨는 것은 스스로 숨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옛 은사(隱士)들도 몸을 엎드려 나타나지 않은 것이 아니며, 말문을 닫고 드러내지 않은 것이 아니며, 지혜를 감추고 표현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시대의 운명이 크게 그릇되었기 때문이다.” (『장자·외편·선성』)
“(천하가 잘 다스려지면) 천하에는 숨어있는 선비[隱士]도 없고 버려둔 선한 이[遺善]도 없을 것이다.” (『순자·정론』)
은(隱)과 일(逸)은 모두 ‘숨다’·‘피하다’·‘감추다’란 뜻이다. 은일지사(隱逸之士)는 은거하며 벼슬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흔히 ‘은사’라고 통칭했고, 高士·居士·處士·逸士·隱者·逸民 등으로도 불렸다.
중국 고대의 사인, 문인의 입장에서 볼 때, 벼슬[仕]과 은거[隱]는 그들의 기본적인 생존 방식이었다. 출사하면 나타나고 벼슬하지 않으면[혹은 내쳐지면] 숨는 것이니, 이 둘 외에 다른 선택은 없었다. 대부분의 ‘은사’는 은일의 삶을 통해 시문 창작과 전원생활을 하며 지내왔다. 그리하여 ‘은사’는 선진시기부터 청대에 이르기까지 독특한 사회 군체이자 문학창작의 중요한 역량으로 작용해 왔다.
역사서에서 『사기』, 『한서』에는 은사에 대한 전(傳)이 없다. 정사(正史)에서 처음으로 은사전을 수록한 것은 남조 진송(晋宋)시기 범엽(范曄)이 지은 『후한서·일민전(後漢書·逸民傳)』이다. 그 후 『진서(晋書)』·『송서(宋書)』·『남제서(南齊書)』·『남사(南史)』·『양서(梁書)』·『위서(魏書)』·『북사(北史)』·『수서(隋書)』·『구당서(舊唐書)』·『신당서(新唐書)』·『송사(宋史)』·『원사(元史)』·『명사(明史)』·『청사고(淸史稿)』 등 총 15부에 모두 은일전이 실렸다.
각 역사서에 실린 은사의 수를 보면 다음과 같다. 『후한서·일민전』(18명)·『진서·은일전』(40명)·『송서·은일전』(43명)·『남제서·高逸傳』(17명)·『남사·은일전』(53명)·『양서·處士傳』(14명)·『위서·逸士傳』(4명)·『북사·은일전』(6명, 附1명)·『수서·은일전』(4명, 附1명)·『구당서·은일전』(21명)·『신당서·은일전』(25명)·『송사·은일전』(43명, 附5명)·『원사·은일전』(6명, 附3명)·『명사·은일전』(11명, 附1명)·『청사고·遺逸傳』(54명)이다. 이상 15개 정사에 총 365명의 은사가 기록되어 있다.(이중 일부는 중복)
하지만 정사에 수록된 은일전은 완벽하진 않다. 25사(史) 가운데 10사(史)에는 은일전이 없는데, 이는 당시 은사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여러 전(傳)에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은일전 외에도 기타 시문집(詩文集)·필기(筆記)·방지(方志)·유서(類書) 등에 수록된 경우가 정사에 수록된 것보다 훨씬 많다. 예를 들어 『송사·은일전』에 수록된 48명과 비교해 볼 때, 송대 여러 문집 등에 보이는 은사 가운데 성과 이름이 고증된 사람은 378명으로, 정사에 수록된 수의 7배에 달한다.(張海鷗, 「宋代隱士隱居原因初探」, 『求索』, 1999년 제4기 참고)
은사는 명칭에서도 말해주듯이, 그들은 주로 산이나 동굴, 바다 및 유벽(幽僻)한 곳에 숨어 살았다. 이 가운데 산에 가장 많이 은거했다. 위의 지도와 두 개의 표는 장싱위(蔣星煜)가 정사·은일전에 기록된 은사를 토대로 하여, 그들이 은거한 은거지의 지역적 분포를 기록한 것이다.(蔣星煜, 『中國隱士與中國文化』, 上海三聯書店, 1988).
이 중 「중국 역대 은사의 지역적 분포표」에 근거하면, 은사들이 은거했던 산은 총 20개이다. 여산(廬山, 강서)·숭산(嵩山, 하남)·무이산(武夷山, 복건)·천태산(天台山, 절강)·청성산(青城山, 사천)·형산(衡山, 호남)·화산(華山, 섬서)·태백산(太白山, 섬서)·중조산(中條山, 산서)·동정산(洞庭山, 강소)·소문산(蘇門山, 하남)·임려산(林慮山, 하남)·종남산(終南山, 섬서)·나부산(羅浮山, 광동)·아미산(峨眉山, 사천)·무당산(武當山, 호북)·사명산(四明山, 절강)·왕옥산(王屋山, 하남)·녹문산(鹿門山, 호북)·태척산(大滌山, 절강)이다.
이들 산은 하남성(4개)에 가장 많이 분포하고 다음으로 절강·섬서(각3), 사천·호북(각2)을 이어 강서·산서·강소·복건·광동·호남(각1개)의 순이다. 또한 각 시대별로 이들 산에 은거한 은사의 수는 선진(6명)·한(6명)·삼국(2명)·진(22명)·남북조(15명)·수(6명)·당(52명)·오대(14명)·송(56명)·금(6명)·원(15명)·명(13명)·청(5명)으로 총 219명이다.(이상의 내용은 梅新林, 『中國文學地理形態與演變』, 506-512쪽 참고)
중국 고대의 은사는 사인이자 문인으로서 벼슬과 은거를 생존방식으로 삼아왔다. 은일의 삶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든 벼슬자리에서 내쳐져서였든 아니면 왕조교체기에 유민(遺民)들의 선택이었든, 그들은 각 시대적 상황이 나은 사회 군체이자 문인 군체로서, 중국 고대 문학창작의 중요한 역량으로 작용해 왔다.
* 본 보고서의 내용은 중국인문사회연구소의 지식생산이며 인용 시 자료원을 명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