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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100대 성(姓) 발원지의 분포와 특징
자료출처: 袁義達, 『中國姓氏』, 華東師範大學出版社, 2002
위 지도는 위안이다(袁義達), 『中國姓氏』에 수록된 “중국 100대 성의 발원지”의 자료를 통해 작성한 것이다.
중국의 성(姓)에 대한 역사적 과정을 간략히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삼황오제와 하・상 두 조대는 중국 성의 맹아기이다. 현재 고증이 가능한 성은 약30개 정도에 달한다. 복희씨 후대의 성은 풍(風), 황제는 공손(公孫), 염제는 강(姜), 요는 기(祁), 순은 요(姚)이다. 주로 晋朝(하남・섬서 일대)와 隴陝(섬서・감숙 일대)일대에 분포한다. 복희묘는 감숙 천수(天水), 황제릉은 섬서 황릉, 염제릉은 섬서 보계(寶鷄), 요묘는 산서 림분(臨汾), 순묘는 산서 운성(運城)에 각각 위치한다.
둘째, 중국의 대부분의 성은 서주와 춘추시대에 출현했다. 주로 하남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 하남 지역의 정치사회 상황과 연관이 있다.
첫 번째 유형은 국명과 지명을 따른 경우이다. 서주는 분봉제의 시기였으므로 제후국의 위치와 성의 분포는 상호 관련이 있다. 희(姬)성의 제후국은 노(魯)・위(衛)・진(晋)・등(滕)・우(虞) 등이며, 이성의 제후국은 제(齊)・송(宋)・진(陳)・기(杞)・초(焦) 등이다. 『춘추대사표(春秋大事表)』에 따르면, 춘추시기 기록의 고증이 가능한 제후국은 총212개라고 한다.
<표1> 춘추시기 열국의 분포
성 |
열국 수 |
성 |
열국 수 |
성 |
열국 수 |
성 |
열국 수 |
하남 |
62 |
산동 |
46 |
산서 |
19 |
섬서 |
18 |
호북 |
18 |
안휘 |
14 |
하북 |
8 |
강소 |
6 |
감숙 |
2 |
절강 |
2 |
사천 |
1 |
호남 |
1 |
운남 |
1 |
요령 |
1 |
불상 |
13 |
합: 212 |
212개 가운데 135개는 화북(현 북경・천진・하북・산서・내몽고)일대의 5개성에 분포하고, 62개는 하남 지역에 분포한다.
두 번째 유형은 관직・직업을 따른 경우이다. 예를 들어, 張성은 관직에서 비롯되었다. 張성의 시조는 황제의 자손인 휘(揮)이다. 휘는 활[弓箭]을 처음으로 만들어서 궁정관(弓正官)으로 임명되었고 궁장(弓長)으로도 불렸다. 궁장(弓+長) 두 글자를 합치면 ‘張’이 된다. 또한 李성의 조상은 요임금 때의 理官(이관: 현재 법관에 해당)이며 성은 理였다. 리정(理征)은 상나라 주왕(紂王)에게 직간하다가 주왕의 분노를 사서 죽음을 당했다. 그 후 이정의 아들 이리정(理利貞)이 하남으로 도망가서 나무의 과실을 의지하며 살았다. 그래서 나무[木]와 열매[子]가 합성된 성을 취해 李라고 했다.
세 번째 유형은 아버지의 名・字・작호(爵號)・시호(諡號)를 따른 경우이다. 예를 들면, 宋武公의 후예의 성은 무(武)였고, 宋穆公의 후예의 성은 목(穆)이었고, 宋桓公의 후예의 성은 환(桓)이었다. 대체로 王・侯는 주로 작호에서 비롯된 것이고, 문(文)・선(宣)・민(閔)・간(簡) 등은 시호에서 비롯된 것이다.
셋째, 진한(秦漢)이후는 중국 성의 안정기이다. 진나라 통일 이후 분봉제에서 군현제로 바뀌면서 공・후・백・자・남 등의 작위는 실질적인 의미를 상실했다. 진한 이후 황제들이 자신의 성을 공신들에게 하사함에 따라 유명한 황제의 성인 李・劉・趙・朱 등이 대규모의 성이 되었다. 또한 피휘(避諱)는 새로운 성을 탄생하는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劉 明帝의 이름은 유장(劉莊: 漢文帝 劉恒[유항]의 손자, 梁孝王 劉武의 아들)이었는데, 휘하기 위해 ‘莊’성이 뜻이 유사한 ‘嚴’성으로 바뀌었고, 漢安帝의 이름은 류경(劉慶)이었으므로, ‘慶’성이 뜻이 유사한 ‘賀’성으로 바꾸었다. 당 현종의 이름은 李隆基(Li long ji)이기 때문에 ‘姬(Ji)’성이 ‘周’성으로 바뀌었고, 당 헌종의 이름은 李純(Li chun)이기 때문에 ‘淳于(Chunyu)’성이 ‘于(Yu)’성으로 바뀌었다.
다음은 위의 지도에 나타난 중국 성의 발원지의 지역적 분포와 특징이다.
전국 단위로 볼 때, 중국의 성의 발원지는 주로 황하 중하류의 하남・산서・산동・섬서・안휘・하북 일대에 집중하고 있다. 2000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100개성은 전 인구의 87.23%를 차지하며, 대부분 위의 6개성에 분포한다고 한다.
<표2> 중국의 100대 성의 발원지
지역 |
성(姓) |
비율(%) |
하남 |
李張劉陳, 黃孫胡高, 林郭宋鄭, 謝韓馮于, 程袁鄧許, 傅呂蘇蔣, 蔡葉潘戴, 賀田范方, 石廖陸康, 毛邱秦江, 顧邵孟龍, 段雷湯尹, 武賴龔文 |
45.51 |
산서 |
王楊趙唐, 董賈魏閻, 郝侯萬黎 |
15.96 |
산동 |
朱董曹曾, 盧丁薛任, 姜范姚譚, 鄒金陸孔, 崔邱孟武, 常 |
6.95 |
섬서 |
周梁韓程, 余杜金白, 毛秦史錢, 尹喬 |
6.07 |
안휘 |
徐何蕭沈, 鐘 |
4.31 |
하북 |
劉馬尹 |
3.93 |
강소 |
吳彭滕賀, 常 |
2.81 |
호북 |
羅熊 |
1.18 |
절강 |
汪顧 |
0.51 |
부기: 밑줄 친 글자는 발원지가 두 개 지역을 겸하고 있음을 표시함 |
합: 87.23 |
또한 중국의 성의 분포는 지역적 특징이 강하다. 량(梁)성은 전국 성의 21위를 차지하며 0.34%에 달하는데, 이 중 61%가 광동・광서지역에 집중 분포한다. 라(羅)성은 50%가 광동에, 林성은 39%가 복건에, 고(顧)성은 71%가 강소・절강에 각각 집중 분포한다.
이 외에도 중국의 성은 민족 간의 융합방식을 통해 형성되기도 했다. 이를 테면, 화하민족과 주변민족은 부단히 충돌하면서 서로의 성을 융합하였다. 첫 번째 방식은 직접적으로 소수민족의 성씨를 한족의 성씨로 흡수한 경우이다. 안(安)・미(米)・합(哈)・탁발(拓跋)・모용(慕容)・우문(宇文)・호연(呼延)・혁연(赫連) 등이 그러한 예이다. 安성은 동한 파르티아인이 중원에 와서 거주하면서 형성된 성이다. 탁발・모용・우문은 선비족의 3대 부락이었고, 호연은 흉노 4대 부락 중의 하나였다. 두 번째 방식은 한족의 성으로 바꾼 경우이다. 대표적인 예로 북위(北魏) 정부가 아래로 남하하면서 선비족 등이 한족의 성을 사용한 경우이다.(『위서・관씨지(魏書・官氏志)』, 약17개). 예를 들면, 독고(獨孤)->劉, 후막진(侯莫陳)->陳, 晋->周, 흘골(紇骨)->胡, 시루(是摟)->高, 구림(丘林)->林, 하발(賀拔)->賀, 질라(叱羅)->羅, 발례(拔列)->梁, 출대한(出大汗)->韓, 질려(叱呂)->呂, 토복노(吐伏盧)->盧, 파다라(破多羅)->潘, 독고혼(獨孤渾)->杜, 보륙고(步六孤)->陸, 호고구인(胡古口引)->侯, 하뢰(賀賴)・하란(賀蘭)->賀, 탁발(拓跋)->元 등이 그러하다.(이상의 내용은 胡兆量 外, 『中國文化地理槪述』(第三版), 北京大學出版社, 2012, 45-50쪽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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