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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대 진사(進士)의 지역적 분포
자료출처: 梅新林, 『中國文學地理形態與演變』, 復旦大學出版社, 2006
위 지도는 메이신린(梅新林)의 『中國文學地理形態與演變』(469-470쪽)의 자료를 토대로 청대 진사의 지역적 분포를 작성한 것이다.
중국 역대 진사의 수는 청 말에 이르러 총 106,310명에 달한다. 송(36,131명)->청(26,847명)->명(24,878명)->당(7,516명)->금(6,601명)->요(2,494명)->원(1,165명)->오대(678명)의 순이다.(『中國文學地理形態與演變』, 463-464쪽)
청대 진사(25,664명/관적을 알 수 있는 사람에 한함)의 지역적 분포를 보면, 강소(2,949명)->절강(2,808명)->하북(2,674명)->산동(2,270명)->강서(1,919명)->하남·산서(1,721명)->복건(1,371명)->호북(1,247명)->안휘(1,119명)->섬서(1,043명)->광동(1,011명)->사천(753명)->호남(714명)->운남(694명)->귀주(607명)->광서(568명)->감숙(289명)->요령(186명)의 순이다.
역대의 진사·서원·장원의 지역적 분포는 모두 남방지역에 상대적으로 더욱 우세했다. 특히 명대의 진사(24,814명/관적을 알 수 있는 사람에 한함)는 절강(3,697명)·강서(3,114명)·강소(2,977명)·복건(2,374명)·안휘(1,169명) 등 남방지역이 반 이상을 차지한다. 반면, 청대에는 하북·산동·하남·산서·호북 등의 북방지역이 강소·절강·강서·안휘·복건 등의 남방지역 분포와 거의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청대 강희 52년(1713), 과거제도는 북방·남방·중부 등으로 나눈 분권(分卷) 방식으로 선비를 뽑았다. 그 결과, 한편으론 남방의 과거 응시 문인의 사도(仕途)를 제한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북방 및 그 주변 지역의 문화 발전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청대는 명대나 그 전대 진사의 지리분포에 비해 더욱 광범위한 분포를 보이며, 이는 청대 문인의 공간 이동 변화에 영향을 주었다.
특히 명대에는 문화 발전의 축적과 관성의 작용으로 인해 남방이 여전히 명확한 우세를 보였고, 남(남경)·북(북경)의 두 도성에서 모두 회시(會試)를 거행했다. 반면, 청대는 북경에서 집중적으로 거행했으므로 청대의 문인들의 과거 응시 역시 북방에 보다 집중되었다. 그리고 청대에 북경에 도읍을 정함으로써 북경 부근의 하북·산동·하남·산서 등의 동시에 함께 상승되었다.(『中國文學地理形態與演變』, 470-177쪽 참고)
이상의 제도적 배경으로 볼 때, 청대는 명대에 비해 진사의 지역분포가 남북이 유사하며, 특히 명대 이전에 모두 남방이 우세하다가 청대에 이르러 북방이 많아진 원인 중의 하나이다.
* 본 보고서의 내용은 중국인문사회연구소의 지식생산이며 인용 시 자료원을 명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