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 문명인가 아니면 중국적 가치인가?

최근 10년간 중국의 역사주의 사조

(원제: 普世文明,还是中国价值? 近十年中国的历史主义思潮)

 

 

발표자: 許紀霖 (华东师范大学)

 

 

“10년이 지나면 강은 동쪽으로 흐르고, 또다시 10년이 지나면 강은 서쪽으로 흐른다(十年河東, 十年河西)”라는 말보다 더욱 확실하게 중국 사상계의 사조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없을 것이다. 10년 전 밀레니엄에 자유주의와 신좌파의 논쟁이 막을 내리자마자 모더니티, 자유, 민주와 공정(公正) 등의 문제를 둘러싼 내부 분열이 정착되어 대화는 독백으로 전환되고, 냉소가 이 논쟁을 대체했다. 얼마 전에 지나간 2000년대는 중국이 우뚝 일어난 10년이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의 흥기는 이미 세계가 공인하는 사실이 되었다. 우뚝 일어선 중국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세계의 대국으로서 어떤 문명의 가치를 세계인들에게 드러내 보일 것인가?

이 새로운 시대를 배경으로 대립각을 이루고 있는 중국의 지식인들은 다시 새로운 사상에 초점을 모으게 되었는데 그 초점은 중국의 발전 뒷면에 존재하는 가치의 정당성에 맞추어있다. 30년간의 개혁개방을 지속하여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면서 글로벌 주류 문명에 녹아드느냐, 아니면 독특한 중국적 가치를 찾아 새로운 모더니티를 제공하느냐의 ‘보편적 가치론’과 ‘중국 특수론’의 감추어진 논쟁이 공공영역에서 직접적으로 전개되지는 않았지만 중국과 관련된 모든 문제에서 거의 그 뒷면의 살기등등한 기세를 엿볼 수 있었다. 현재 사상계의 서사 배후에서 유행하는 각종 ‘중국적 가치’, ‘중국 패러다임’, ‘중국 주체성’ 등은 한 가지 이론 가설을 공유하고 있다. 이는 즉 반계몽적, 보편 이성에 대항하는 역사주의다. 새로운 세기 초의 역사주의 사조는 성대하게, 장관을 이루며 한때 중국 사상계의 저명한 학설이 되었다.

역사주의(historismus) 사조는 계몽운동에 대한 반동으로 마이네케(Friedrich Meinecke)의 경전적 연구에 따르면 역사주의는 유럽에서는 이성주의와 마찬가지로 오래되었지만 18세기와 19세기가 전환되던 시기에 하나의 사조로 독일에서 등장하였고 핵심 개념은 개성과 발전이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 중세기의 기독교 윤리부터 세속화된 계몽이성까지 역사적 가치는 보편적 자연, 신의 뜻(神意) 혹은 인성 가운데 있고 객관적으로 보증된다고 본다. 그러나 역사주의는 역사의 이면에 객관적인 법칙, 초월적 의지 혹은 보편적 인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역사는 단지 개성의 존재방식이며 국가 내지 개성화의 집체체현일 뿐이라고 본다. 이 세계에서는 보편적으로 효율적인 가치 혹은 역사문화를 초월하는 보편적 질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인류의 가치는 특정한 역사 세계에 속하며, 어떤 문화, 문명 혹은 민족정신에 속하는 것이다. 가치가 정당한지 여부는 오로지 구체적인 역사 문화 전통과 민족문화시각에만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조지 이거스(Georg G. Iggers)가 지적한 바와 같이 역사주의의 요지는 ‘계몽운동의 이성과 인도주의의 사상을 거부’하고 ‘인간에게 본성은 없고 역사만 있음을 인정하는’ 데 있다.

중국이 역사주의의 정신적 고향은 아니지만 여타 비서양국가와 마찬가지로 계몽운동의 조류가 휩쓸고 지나간 후 보편적 이성에 대한 반동이 등장하고, 민족정신으로 세계정신의 각종 형식에 대항하는 역사주의가 등장했다. 1990년대의 문화 보수주의는 민족의 역사 문화 전통을 중시하면서 계몽의 보편 목표에 반항하기보다는 오히려 유가 문화와 계몽 이상의 결합을 시도했고, 계몽적 보편 가치 속에서 중국의 특수한 길을 찾았었다. 그러나 21세기 초에 이르러 역사주의는 중국 전통 및 보편적 가치와 직접적으로 대립하여 더 이상 1990년대 반서양주의가 적대시하던 ‘현실의 서양’이 아닌 ‘이데올로기의 서양’, 즉 계몽이 대표하는 보편적 가치를 저항의 대상으로 삼았고, ‘현실의 서양’에 대한 비판은 ‘이데올로기의 서양’에 대한 이론 저항으로 상승되었다.

계몽 가치에 대한 판단은 먼저 서양 문명의 보편성의 해체에서 시작된다. 장쉬둥(張旭東)은 헤겔의 변증법을 통해 보편성과 특수성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전복시켰다/뒤집었다. “보편성은 특수성의 특수한 표현에 지나지 않으며, 특수성의 지나친 진술일 뿐이다. …… 헤겔의 의미를 지닌 변증법의 어휘로 말하자면 보편성은 특수성의 자아의식이지만 그것의 객관적인 진리는 아니다.” 소위 보편 문명이라는 것은 스스로 공언하는 식의 특수문명, 즉 특수문명 중에서 과도하게 팽창된 자아의식에 불과하다. 보편 문명이 유럽의 구체적인 맥락으로 환원되면 그것은 서양 문명의 특수한 표현, 즉 서양 문명이 전세계로 확장되는 과정 중에서 인위적으로 구축한 역사적 신화에 불과하다. “사유재산, 주체성, 법제, 시민사회, 공공 공간, 헌정국가에서부터 한 걸음 한 걸음 국제법으로 확장되고, 다시 세계 역사로 확장되고 난 후 거꾸로 세계 역사의 방식으로, 보편성의 명의로 자신의 특수한 길과 특수한 이익을 변호한다.” 장쉬둥은 ‘이런 거짓 ‘보편’의 이름의 특수 가치관이 글로벌화 과정에서 내재된 문화 단일성과 억압성을 결정’했고 오늘날 중국인이 ‘지금 일종의 보편적인 사물, 문명의 주류가 존재해 중국이 기대고, 녹아들기만 하면 된다’고 여기게 했다고 일깨웠다. 보편적 가치에 녹아든 후에 중국은 ‘모더니티’를 얻는 대가로 ‘중국’의 상실을 지불했다. 중국의 역사주의는 급진적인 ‘보편적 가치론’ 뿐만 아니라 온화한 ‘중서조화론’까지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다. 1990년대 이후의 문화 보수주의는 중국적 특색을 띤 모더니티를 추구하고자 했을 뿐 아니라 ‘서양=보편성, 중국=특수성’이라는 이원적 입장을 상정했다. 때문에 이런 중국적 특색을 추구하는 특수주의와 서양을 중심으로 하는 보편주의는 모순을 일으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서로 보충하기도 했다. 사카이 나오키(酒井直樹)는 일찍이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가 서양 보편주의를 척도로 일본적 특색을 띤 길을 추구하는 입장을 비판한 바 있다. 그는 후자가 지닌 일본적인 특수성이 서양의 보편성에 대한 반항을 형성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서양의 중심적 지위를 강화한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서양의 보편주의는 각종 비서양의 특수주의를 ‘타자’로 삼아 자신의 유일한 주체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중국의 역사주의에서 보면 서양의 보편적 모더니티는 헤겔식의 목적론적 역사관을 상정하여 비서양 민족은 오늘날의 세계에서 전통에서 현대로 진화하면서 서양과 동질화된 보편 국가가 되려고 하는 피할 수 없는 숙명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왕휘(汪暉)는 “‘모던’은 일종의 시간적 개념으로서, 구분을 통해 다른 시기를 현대 밖으로 배제한다. 이런 의미에서 ‘모던’은 배척성을 띤 개념이다. 이는 동일 시공 속에서 생활하는 여타 사물을 배제하고 패권식의 등급 구조를 구축한다.” 헤겔식의 목적론적 역사관은 전통과 현대, 낙후와 선진의 시간적 서열을 통해 세계 역사를 동일한 종착점을 가진 발전 과정으로 재통합했다. 어떤 민족이든 발전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하나같이 ‘신성한 시각’을 가리키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서양식의 모더니티에 도달하는 것이다. 서양을 유일한 본보기로 삼는 모더니티는 다른 발전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단일성의 패권 등급 구조를 형성했다. 설령 당신이 추구한 것이 중국적인 특색을 띤 모더니티의 길이라면 여전히 서양 보편 문명의 여래불의 손바닥을 벗어날 수 없다. 고야스 노부쿠니(子安宣邦)가 근대 일본의 특수한 길에 대해 비판을 한 것처럼 이는 그저 ‘근대적 사유 속에서 근대를 사고하는 것’일 뿐, 근대를 초월하려 한다 해도 결국에는 서양 보편주의의 법칙 안으로 떨어진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문명 일원론의 숙명에 저항해야 하는가? 역사주의는 서양의 보편성에서 출발해 인간 세상의 모든 보편성에 대한 저항으로 나아간다. 객관적인 영원한 가치가 없어 모든 것이 역사의 변천에 따라 변화한다면 유일한 진실한 가치는 민족의 본체성, 즉 일체화된 민족정신이다. 소위 말하는 보편적 모더니티가 인위적으로 구축된 허구의 신화이니만큼 비서양 민족은 ‘근대 사유 밖에서 근대를 사고’할 이유가 있고, 서양의 모더니티 밖에서 자신의 길을 걸을 이유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다원적 모더니티이다. 왕휘는 “소위 다원적 모더니티라는 것도 설령 한편으로는 현대의 어떤 불가피성과 가치를 인정한다 할지라도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 다른 전통과 사회적 조건 하에서 등장한 바 있는 서로 다른 모던 패러다임이 그들이 서양의 모더니티와 차이가 있다는 이유로 간단히 전통의 범주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 문명 일원화의 모더니티 방안은 21세기 초에 이르러 ‘탈시간화’의 거대한 변화가 나타났다. 모더니티의 태양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존재한다. 여러 민족의 모더니티의 길은 모두 동등한 가치와 자주성을 가진다. 그들 위에 더욱 높은 차원의 가치 표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의 다원적 모더니티 방안이 일본과 한국 학자의 동아시아 모더니티 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이 확실하다. 쑨거(孫歌), 왕휘 및 중국에서 강의하는 대니얼 벨(Daniel Bell) 등 동아시아 역사에 익숙한 학자들은 모더니티를 탐구하는 시선을 구미에서 동아시아로 이동시키고 동아시아와 중국의 역사 문화에 대한 연구를 통해 동아시아의 모더니티가 서양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서양의 역사 기원과 완벽하게 다름을 논증했다. 이로써 형성된 동아시아 모더니티 패러다임이 서양적 보편주의에 대한 도전을 구성했다. 보편적 모더니티 방안은 이로 인해 역사화, 공간화 되었다.

여러 보편적 서사가 질의를 받을 때 유일한 확정적인 가치가 민족 생명 자체로 내려왔는데 그것이 바로 중국이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이 중요한가’라는 데 있다. 각종 ‘중국적 가치’, ‘중국 패러다임’, ‘중국의 주체성’의 민족 서사의 이면에는 한 번도 의식하지 못했던 이원적 가설, 즉 일체화된 중국과 서양이 존재한다. 이런 이원적 구조의 중국/서양은 단지 서로 ‘타자’ 관계가 되는 추상적인 부호일 뿐이다. 일체성의 중국이 일종의 상징부호로서 서양에 의해 정의되었을 때 동질화된 서양도 마찬가지로 중국에 의해 가공되었다. 부호적 존재의 이면은 허구의 이데올로기로, 이는 글로벌화의 과정 중 다른 문명이 공동으로 직면하는 모더니티의 곤경으로 즉 동 ‧ 서문명의 충돌로 단순화된다. 반세기를 이어온 개방을 겪은 후 서양과 확실히 구분되는, 투명한 중국은 사실상 이미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서양의 여러 문명 전통은 자본주의 제도의 이성화, 자유주의의 이념과 가치로부터 마르크스의 사회주의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미 현대 중국의 현실 속으로 깊이 각인되었고, 중국 자체의 현대적 담론과 역사적 실천으로 내화되었다. 오늘날의 중국은 이미 여러 외래와 본토 문화의 혼혈아가 되었다. 서양에 오염되지 않은 민족 공동체를 얻기 위해 일부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들은 고의로 중국과 서양의 이원적 대립을 확대하여 저항을 통해 자신과 다른 서양을 제거하고, 순수하고 분명한 중국을 다듬고자 했다. 어느 젊은 철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과거 30년 동안 중국 철학은 주체성의 전환을 완성하였다. 저항을 통해 주체를 유지하여 대화의 주체로 바뀌었지만 이 변화가운데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데 즉 이해되기를 바라다보니 근본적으로 주체적인 지위를 상실했다. 그러므로 대화의 주체가 되면서 그 속에 저항의 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中國可以說不(한국명 ‘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의 원래 구성원이 두 번째로 만들어낸 정론 베스트셀러 《中國不高興》 역시 ‘우리’를 형성하는 유일무이한 방법으로 서양에 반항하는 것을 들었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로 인기를 얻자 일련의 ‘중국’ 베스트셀러 시리즈, 예컨대 《中國沒有榜樣》, 《中國怎麽辦》, 《中國站起來》 등이 앞다투어 쏟아져 나와 ‘한목소리로 중국을 부르는’ 장관이 연출되었다.

2008년은 중국에게도, 세계에게도 매우 중요한 한해였다. 베이징은 전례 없는 화려한 개막식과 미국을 압도하는 최다 금메달을 획득함으로써 제13회 하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세계에 중국이 우뚝 일어섰음을 알리던 때 미국에서는 전 세계를 전염시킨 금융위기가 발발했다. 세계 각국이 하나같이 마이너스 성장을 보였지만 중국만은 다른 모습을 보이며 정부의 강력한 투자로 2009년에 GDP 성장 8%의 목표를 이루었다. 이렇게 중국은 신속하게 세계무대의 중앙으로 나아갔다. 이에 대해 서양의 어느 학자는 다음과 같은 분석을 내놓았다. “이런 발전 추세라면 2050년이면 중국이 미국을 대신해 세계 최고의 패주가 될 것이다.” 2008년 이전에는 ‘세계가 중국을 발견’했다면 2008년 이후에는 이미 ‘중국이 세계무대에서 우뚝 솟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갑작스러운 거대한 변화 역시 역사주의적 경향을 띤 지식인들에게 미묘한 심리적 변화를 가져왔다. 얼마 전 그들은 조심스레 중국 모더니티의 특수한 경험에 대해 논증한 바 있다는데 이제는 오만하게 조심스럽던 ‘중국 경험’을 한단계 상승해 체계를 이룬 ‘중국 패러다임’으로 말하고 있다. 이 같은 패러다임은 중국의 특수한 국정(國情)에 적합할 뿐 아니라 서양과 겨루기에 충분한 다른 종류의 모더니티로 승화하여, 비서양 국가가 참고하고 모방할 수 있는 최신 사례로 탈바꿈했다. 과거에는 ‘중국 특수론’으로 보편적 가치의 공격을 막아냈다면 지금은 특수가 보편으로 바뀌어 ‘중국 패러다임’이 돛을 달고 출항하여 국제무대로 나아가 전세계 문명의 담론 패권을 쟁탈한다.

이런 형형색색의 ‘중국 패러다임’에는 모두 부강(富强)을 최고로 치는 국가주의 색채로 충만하다. 최근 중국 사상계에는 이목을 끄는 현상이 등장했다. 민족주의가 온화한 문화 보수주의에서 극단적인 정치 보수주의로 탈바꿈하고 반(反)모더니티의 슈트라우스주의와 국가이성제일의 슈미트주의가 손을 잡고 급진 좌익 그룹이 우익으로 전환되어 현재 정치 질서를 인정하는 국가주의로 전향한 것이다. 국가주의의 등장은 역사주의의 사조이자 긴밀한 관계가 있다. 철학 영역의 역사주의는 정치적인 국가주의로 발전되고, 개중에는 종잡을 수 없는 논리의 통로가 존재한다.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은 《문명의 충돌과 세계질서의 재편》에서 두 가지 보편 문명의 해설을 명확히 구분했다. 첫째는 이데올로기 냉전 혹은 이원식의 ‘전통과 현대’ 분석 틀에서 보편 문명을 서양을 본보기로 하는, 여러 비서양 국가들이 모방할 가치가 있는 문명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다원적 문명의 이해의 틀에서 보편 문명이 각 문명의 실체와 문화 공동체가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일부 공공가치 및 상호 공유와 중첩의 사회 문화 제도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전자는 서양을 중심으로 하는 ‘보편적 가치론’에 반대하지만 중국의 역사주의가 반대의 길에서 얼마나 멀리 갔는지 서로 다른 문명이 공유하는 보편적 가치까지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각 민족의 가치가 약분될 수 없으며 각 국가는 모두 자신만의 특수한 모더니티가 있다고 굳게 믿는다. 따라서 소위 모더니티라는 것은 그것의 보편적, 확정적 가치에 의해 분리되고, 유일하게 확정할 수 있는 내용은 바로 GDP를 계량화 기준으로 삼는 국가 부강과 막스 베버 의미에서의 제도 합리화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의 ‘반현대적 모더니티’는 법가식의 부국강병을 견지하며 모더니티의 제도 합리화를 배척했다.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노선은 한편으로는 마오의 부강 모더니티를 계승하며 발전이 반드시 따라야 할 도리임을 강조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데올로기의 불일치를 초월하는 비논쟁적 전략을 채택해 제도합리화 차원에서 서양과 궤를 같이하는 것을 중시했다. 소위 베버식의 제도합리화는 도구적 이성의 방식으로 사회 각 영역을 원가로 계산하는 회계제도와 비인격화의 科層관료제를 통해 조직하는, 다시 말해 보편적인 기업화 관리이다. 이런 제도합리화는 탈가치, 탈정치, 관리효율 제고와 능력 제어를 목적으로 하는 이성화 개혁이다. 이는 각종 정치체제와 결합하여 자유헌정체제에 적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 권력 체제를 위해 일할 수도 있다. 국가주의자들이 모더니티의 보편적 가치를 없애고, 모더니티 속의 윤리성, 제도성을 제거한 후 그들이 말하는 모더니티는 단지 부강의 모더니티와 가치중립적 제도합리화에 불과해졌다. 이런 탈가치, 탈정치의 모더니티는 단지 목적론(목표-수단 합리화)의 모더니티일 뿐 가치론의 모더니티가 아니다. 모더니티는 더 이상 그것의 양도할 수 없는 내재적 가치를 가지지 못한다. 모든 것은 그저 어떤 구체적 목적(예컨대 국가의 부강)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적 수단일 뿐이다.

중국의 국가주의가 서양에 저항하고, 중국의 특색을 띤 길을 추구할 때 사실은 가장 서양적인 방식으로 중국적이라 여기는 이상을 실천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양문명에서 한층 더 진귀한 보편적 가치를 배제하고, 서양문명의 야만적인 부국강병을 계승했다. 1941년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서양을 초월하고자 했을 때 이에 대해 고야스 노부쿠니(子安宣邦 )가 다음과 같이 반문한 바 있다. “이 아시아 ‘근대’ 보편성 주장이 배태한 대립자(對立者) 아시아가 ‘근대’ 원리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대립자가 세계무대에 오르도록 한 것은 바로 근대 유럽 세계사 발전의 결과 아닌가? 게다가 일본이 가장 강력한 대립자가 되도록 한 것은 성공적으로 근대 유럽의 국가 원리를 받아들였기 때문 아닌가?” 사카이 나오키(酒井直树) 역시 다음과 같이 일본의 ‘근대 초월’의 사조를 비판했다. “그들이 반대하는 것은 세계의 유럽중심주의 체계에서 일본인이 가정한 통일성이 공교롭게도 중심 밖으로 배척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실현하고자 한 것은 일본인이 중심과 주체적 위치를 점유하여 일본인 자신의 보편적 기준으로 여타 특수성을 규정하도록 세계를 개조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서양의 사물이 현대 국민국가(nation-state)의 구조에 부합하기만 하면 동의하고자 했다. 그들을 이렇게 하게끔 만든 것은 반서양의 결심이 아니라 모더니티의 길을 뒤따르고자 하는 의지이다.” 여기서 말하는 모더니티의 길은 물론 탈가치, 탈윤리의 부강 모더니티이며, 이로써 국가/국민이 고도로 동질화된 민족의지를 만들어냈다. 오늘날 중국의 국가주의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서양의 무게 중심이 서양 문명의 계몽가치로 구체화되는 것에 반대할 때 오히려 가장 무서운 부강 모더니티를 은밀히 놓아주었다. 표면적으로는 서양과 맞서지만 실제로는 이리저리 부딪히며 하나가 되고 서양의 정신적 포로, 즉 문명 가치가 가장 결핍된 부분의 정신적 포로가 되었다.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역사주의자가 국가주의로 떨어질 때 다른 부분의 인문 감성을 가진 역사주의자는 부강 모더니티를 뛰어넘어 중국 문명의 재건을 시도하여 서양과 보편성의 담론 지도권을 다툰다. 최초로 이 같은 자각의식을 가진 이는 간양(甘陽)이다. 2003년 말, 간양은 중국이 민족국가에서 문명국가로 발전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그는 근대 터키를 본보기로 삼아 만약 한 나라가 서양을 배우고 자기 민족의 문화전통을 스스로 훼멸시킨다면 이는 ‘자기거세식의 현대화’로서 결국 얻어지는 것은 ‘자기 분열적 국가’에 불과할 것이라 했다. “나는 중국이 ‘서양화 되지 않은 현대화’의 길을 선택할 것이라 믿는다. 중국은 일반적인 소국(小國)이 아니다. 그러므로 중국은 터키와 같은 3류 국가가 되는데 만족하지 않고, 서양의 속국이 되는 것에도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1990년대의 문화 보수주의에서 중국 문명을 부흥시킨 것은 민족문화의 특수성을 지키기 위한 것에 불과하며, 2000년대에 이르러 중국이 우뚝 솟은 배경에서 중국 문명의 부흥자들이 강력한 서양과 보편성을 다투는 ‘문명의 욕망’을 싹틔웠다. 장쉬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 ‘글로벌 시야에서의 중국적 가치’ 문제를 제시하는 것은 ‘중국적 가치를 ‘보편 문명’의 높이와 틀에 두고 사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중국적 가치와 보편적 가치 사이에는 어떤 긴장감도 존재하지 않는다. 보편적 가치가 서양의 전유물이 아니므로 “‘중국적 가치’는 필연적으로 ‘세계 문명 주류’의 구성 부분이다. ‘중국적 가치’의 문제에는 반드시 이론적으로나, 철학적으로나 중국적 실천이 선험적으로 모든 기존의 참조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중국적 가치의 실현은 보편적 의미를 가진 역사성의 실험이자 ‘구세계를 타파하고 신세계를 세우자’는 혁명적 집단행동이다.

중 ‧ 서 문명의 문제를 대할 때 중국의 역사주의는 이중적 잣대를 적용한다. 한편으로는 서양이 보편성을 가장하는 특수 문명일 뿐이며 동시에 자신의 문명이 천성적으로 보편적 자격을 갖고 있음을 인정한다. 이 실용주의적인 이중적 잣대가 잠재의식 중에서 ‘적과 나를 구별’하는 ‘문명충돌론’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문명은 보편적인 것인가 아니면 특수한 것인가? 이를 ‘적과 나를 구별’하는 방식으로 확정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세상의 모든 고급 문명은 이중적 성질을 지닌다. 역사발생학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이것들은 모두 특정 사회 문화 전통과 서로 연결이 되어 이로써 자신이 생성되고 발전시킨 역사적 조건으로 삼기 때문에 모든 문명은 특수하다. 그러나 문명을 비교한다는 의미에서 본다면 기독교든 이슬람교든 힌두교든, 아니면 인문화된 유가 문명이든 모두 특수한 민족 개성으로부터가 아닌 신, 우주, 자연과 사회의 보편적 시야로부터 전 인류의 문제를제기한 것이므로 고급 문명은 항상 내재적인 보편적 가치를 지닌다. 추축문명(樞軸文明) 시대에서부터 특정 문화적 배경에서 싹튼 각종 고급 문명은 모두 특정한 지역성을 넘어서 세계에서 자기 민족을 초월하는 보편적 성질을 얻었다. 서로 다른 문명 사이에도 공통된 보편적 배려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깊은 대화를 진행하면 문명 간의 ‘시야의 융합’을 실현하게 된다.

중국의 역사주의 논술 가운데 ‘보편적 가치’와 ‘중국적 가치’를 인위적으로 대립시킨 가설이 있다. 마치 보편적 가치가 서양의 가치이며, 중국의 ‘좋은점’은 반드시 서양의 좋은점과 대립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서양 모더니티가 가진 복잡한 이중성은 보편적 문명을 내포한 계몽적 가치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야만적 확장의 국가이성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는 서양에 의해 독점될 수 없다. 이는 여러 고급 문명이 공통적으로 참여한 결과이지 서양과는 전혀 무관하다. 문제의 핵심은 자유민주의 보편적 가치와 야만적 확장의 국가이성 중 어떤 서양 문명을 흡수하느냐에 있다. 놀라운 사실은 중국의 역사주의는 고야스 노부쿠니, 사카이 나오키 등의 일본 좌파학자들과는 다르게 서양의 포화를 비판하는데 부강을 목표로 하는 마키아벨리즘을 겨냥하지 않고 오히려 부러워했을 뿐이다. 이에 서양 현대성에 대한 토벌이 역방향의 선택으로 나아갔을 뿐이다. 즉 인류의 안하무인의 태도를 제약하는 문명적 가치를 포기하고, 가장 공포스러운 마키아벨리즘만을 남겨둔 것이다.

사실상 유럽 초기의 역사주의는 계몽사로의 일부분에 불과해 인문가치와는 충돌을 일으키지 않았다.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은 유럽 초기 역사주의의 대표 인물인 비코(Vico)와 헤르더(Herder)를 이야기하며 그들은 세상 사람들이 오해하듯 문화 상대주의자가 아니라 진정한 문화 다원주의자였다고 지적했다. 문화 상대주의는 서로 다른 문화적 가치는 비교할 공통성이 없기 때문에 절대적인 옳고 그름도 없다. 모든 ‘好’는 상대적, 부분적이며 특정 민족의 ‘호’만 존재하지 보편적 인류의 ‘好’는 존재하지 않는다. 문화 다원주의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인정하지만 여러 역사 문화 맥락 가운데 보편적 가치에는 서로 다른 문화 형식과 구체적인 표현이 존재한다. 민족문화의 기초를 떠나면 보편적 가치는 근원이 사라진다. 문화 상대주의가 좀더 나아가면 바로 니체식의 허무주의가 된다. 그러나 문화 다원주의는 계몽적 보편적 가치와 공존 가능하다. 벌린은 서로 다른 문화적 가치는 평등하다고 여겼다. 동등하게 진실하고, 동등하게 궁극적이고, 동등하게 객관적이며 가치의 등급 질서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제아무리 복잡하고 변덕스럽더라도 사람이라면 반드시 인류로서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서로 다른 문화 사이에도 마찬가지로 공통적 가치가 존재한다. 민족문화의 차이가 커도 핵심 부분은 서로 중첩되며, 이들 핵심적 가치와 궁극적 목표는 모두 개방된 것이며, 인류가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문화, 국가와 계급의 특수한 가치관을 초월하는 능력을 지녀야 하며, 문화 상대주의자가 우리를 제한하려는 봉인된 상자를 부수고 ‘타자’의 문화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가 상상력을 충분히 발휘하기만 한다면 ‘타자’의 정신을 이해할 수 있고, 그들의 생활 목표를 이해할 수 있어 이로써 인류문화의 공통점과 다양성을 실현할 수 있다.

‘보편 문명인가 아니면 중국적 가치인가’라는 문제는 거짓 문제일 수도 있다. 정확한 답은 보편 문명을 품고 중국적 가치를 재건해야 한다는 것이다.

 

 

 

11허.jpg 

 

 

 

크기변환_허기림2.JPG

자세한 내용은 첨부파일을 참조바랍니다.

 

普世文明,还是中国价值 近十年中国的历史主义思潮_許紀霖.pdf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6 HK 제2차 국제학술회의 议题三 [12주제] 中国近代史”学科史之一页:郭廷以的早期学行及与罗家伦、蒋廷黻的交往 file HK 연구사업단 2011-11-17 16072
45 HK 제2차 국제학술회의 议题三 [13주제] 国家与近代中国大学“实科”之发展——中央大学的例子 file HK 연구사업단 2011-11-17 14582
44 HK 제2차 국제학술회의 议题四 [14주제] 西方政治思想中国家规模与民主主义的关系及其对中国政治发展的启示 file HK 연구사업단 2011-11-17 15617
43 HK 제2차 국제학술회의 议题四 [15주제] 晚清中文读物里华盛顿形象的演变 file HK 연구사업단 2011-11-17 16352
42 HK 제2차 국제학술회의 议题四 [16주제] 清末上海的日文报纸——关于《上海新报》 file HK 연구사업단 2011-11-17 16850
41 HK 제2차 국제학술회의 议题四 [17주제] 张君劢与西方政治学的引进 file HK 연구사업단 2011-11-17 15288
40 HK 제2차 국제학술회의 议题四 [18주제] 《列国政要》与清末高层官员的东西方认知 file HK 연구사업단 2011-11-17 15347
39 [제2회 HK국제학술회의] 新知识 新学科 新职业 file HK 연구사업단 2011-08-10 17569
38 [제2회 HK국내학술회의] 동북아 지역의 지식형성 매커니즘:중국,일본,러시아 비교 file HK 연구사업단 2011-04-13 18562
37 HK 제2차 국내학술회의 제4세션 [제8주제] 중국 외교정책 생산기제와 싱크탱크:조어도 문제를 중심으로 file HK 연구사업단 2011-04-12 16315
36 HK 제2차 국내학술회의 제4세션 [제7주제] 일본에서의 지식형성 매커니즘 연구:열린 지역주의 개념 형성을 중심으로 file HK 연구사업단 2011-04-12 15866
35 HK 제2차 국내학술회의 제3세션 [제6주제] 중국의 나노과학기술 연구와 산업화 file HK 연구사업단 2011-04-12 19125
34 HK 제2차 국내학술회의 제3세션 [제5주제] 러시아의 체제전환과 올리가르히 file HK 연구사업단 2011-04-12 18113
33 HK 제2차 국내학술회의 제2세션 [제4주제] 글로벌화에 따른 일본적 가치의 변용:단일민족국가관에서 다문화공생으로의 사회적인식의 형성 file HK 연구사업단 2011-04-12 16847
32 HK 제2차 국내학술회의 제2세션 [제3주제] 중국과학기술 지식 보급에 있어서 신문의 역할 file HK 연구사업단 2011-04-12 17534
31 HK 제2차 국내학술회의 제1세션 [제2주제] 중국현대미술의 동시대성 file HK 연구사업단 2011-04-12 17795
30 HK 제2차 국내학술회의 제1세션 [제1주제] 현대러시아의 학문구조와 문화학의 등장 file HK 연구사업단 2011-04-12 18195
29 [제1회 HK국제학술회의] 중국의 지식,지식인의 형성과 패러다임의 변화 file HK 연구사업단 2011-03-14 18478
28 HK 연구사업관련 주요 문헌자료 목록 file HK 연구 사업단 2010-12-08 15273
27 [제1회 HK국제학술회의] 3부 [8주제] : 梁启超"东学"再考 file HK연구사업단 2010-10-28 175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