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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계초의 “동학” 재고찰
(원제: 梁启超"东学"再考)
발표자: 川尻文彦 (帝塚山学院大学)
양계초의 “동학”은 양계초가 일본으로 망명한 시기에 일본서적으로부터 배운 서방학문을 가리킨다. 양계초는 1898년, 명치 31년에 일본으로 망명했다. 일본은 당시 서방을 “모범국”으로 보면서 정식으로 근대학문을 받아들였다. 양계초는 당시의 일본에서 새로운 학문정보를 받아들였다. 양계초는 청의보와 신민중보를 통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중문을 사용해 중국 독자들에게 소개했다. 양계초를 “중국 근대 최고의 저널리스트”라고 칭한다면 그 배경은 중국 독자들에게 있어 그는 빠르게 정확하게 새롭고 유익한 지식의 원천인 “동학”을 장악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오늘날, 양계초의 “동학”에 대한 연구는 사실상 성행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 원인은 일본어와 중국어, 서방언어 등 다양한 언어와 사료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문으로 된 연구저작으로는 일본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는 鄭民國의 저작 <양계초 계몽사상 동학의 배경>(9상해서점, 2003)이 있다. 일본 내의 저작으로는 동경대학인문과학연구소가 편집한 <양계초- 서양근대사상의 수용와 메이지 일본>(미스즈책방, 1999)가 있다. 이 책은 양계초가 일본에서 공부한 책을 발굴하였다는 점에서 큰 공헌이 있다. 즉 양계초 “원본”을 찾아내는 작업이다.
그런데 최근에 차별적인 연구조류 속에서 양계초의 “동학”에 대한 관심이 제고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동아시아근대학술과 지식제도가 도대체 어떤 종류 형식의 관점으로 진행되었는가에 대한 연구이다. 예를 들면 어떤 연구자들은 철학, 문학, 경제, 종교학과 민주, 공화, 자유 등의 개념에 관심을 갖는데 즉 이것은 개념사의 연구이다. 이렇게 단순히 메이지 일본의 서방학문이 중국으로 그대로 이식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19세기 후반 중국에서 활동한 선교사의 활동을 소홀히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중국전통학술에 대한 복잡한 근대의 “거듭읽기” 역시 중시해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말하든 간에 근대 동아시아의 사상적 연속 중에서 양계초는 일정한 작용을 했고 이것은 반드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는 이러한 연구조류에 대해 관심을 갖는 한 사람이다.
본고는 근대 중국지식인의 일본인식 관점으로부터 양계초의 “동학”을 보는 초보적인 단계이다. 나는 근대중국의 지식인이 어떻게 일본을 인식하는가로 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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