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교화인백과(인물편) 」 한국_2

조회 수 2581 추천 수 0 2022.06.27 13:51:14

2. 吕李直(Lü Jizhi, 393)

 

뤼지즈는 한국 화교학교의 교육 종사자이다. 정확한 생년월일은 확인되지 않지만, 1956년 인천 소학교의 이사장(董事張)직을 역임했다. 인천 소학교 기숙사가 무너졌을 때, 뤼지즈가 모금운동을 통해 기숙사를 복원했다. 1957년에는 기존의 인천 소학교와 더불어 인천 화교중학을 추가로 건립하여 교장을 맡았다. 또한, 인천 화교자치구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3. 秦裕光(Qin Yuguang, 438)


친위광(1917~)은 한국화교 사업가이자 저널리스트이다. 본적지는 산둥 르자오(日照) 출신으로 조선(현 북한)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출생하였다. 유년시절 부친 친홍원(秦鴻文)을 따라 산둥으로 돌아가 칭다오시 리셴(禮賢)중학을 졸업했다. 1937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당시 한성)에서 홍승루(鴻昇樓)라는 식당을 경영했다. 1955~1960년에는 한성화교자치구 부구장을 1958년에는 <한화(韓華)일보> 부사장을 역임했다. 또한, 1965년 한성화교중학의 상임이사직을 맡았으며, 1969~1971, 1973~1975년에는 한성화교협회회장을 역임했다. 1958년에는 중화요리식업종회감사장직을 1980년에는 회장직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1979917~1217일 한국의 <중앙일보>에 연재된 화교(華僑)60년의 견문록-재한화교변천사략(六十年見聞錄-兼述旅韓華僑變遷史略(1980)이 있다.

 

4. 于鴻章(Yu Hongzhang, 638)


위홍장(1914~)은 한국의 거상화교이자 화교사단의 지도자이다. 본적지는 산둥 무핑(牟平)으로 인천시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식당 공화춘의 사장인 위시광(1883~1948)의 아들이다. 인천화교 소학교를 졸업했고, 1930년 전후에 중국에 돌아가 학업을 이어갔다. 산둥 옌타이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익원(益文)상업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인천으로 돌아왔다. 1943년 일본 헌병대에게 사상불량간첩활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붙잡혀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석방되자 산둥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1948년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인천으로 돌아와 부친의 가업을 이어갔다. 1956~1977년 인천화교협회회장과 화교학교이사장직을 역임했으며, 1965년에는 인천시명예시민의 칭호를 얻기도 했다.

 

5. 于希光(Yu Xiguang, 638)

 

위시광(183~1948)은 한국의 거상화교이다. 본적지는 산둥성 무핑(牟平)이다. 일찍이 한국에 와서 사업을 시작했으며, 후에 인천에 정착했다. 1911년 인천에 공화춘이라는 식당을 개업한 이후 현지에서 상당한 명성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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