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연구사업> 중국의 지식인 >정치경제
41. 许纪霖(허기림: 1957~)
1957년 상해 출생. 화동 사범대학 정치교육과 졸업, 화동 사범대학 紫江학자, 교육부 인문사회과학 중점 연구기지∙화동사범대학 중국 연구사상문화 연구소 상무 부소장, 화동사범대학 역사학과 중국 근대사상사 전공 박사생 지도, 화동 사범대 인문 고등 연구원 상무 부원장. 상해 역사학회 부회장, 비서장, 중국 사학회 이사, 상해 철학 사회 과학 연합회 위원, 홍콩 중문대학 《二十一世纪》 잡지 편찬위원을 역임하고 있다. 최근에는 주로 20세기 중국의 사상사와 지식인을 연구및 상해 도시 문화를 연구하고 있다. 주요 저작으로는 《无穷的困惑》(上海三联书店,1988), 《智者的尊严》(学林出版社,1991),《第三种尊严》(人民文学出版社,1996), 《城市的记忆——上海文化的多元历史传统》(罗岗合著)上海书店出版社,2011,《现代中国思想的核心观念》(与宋宏合编)上海人民出版社,2011 등이 있다.
42. 薛勇(설용: 1951~)
1951년 하북 보정에서 태어남. 1966년 하북 보정 제2중학을 졸업하고, 1969년에는 내몽고 생산 건설 병단에 참여한다. 농업노동자로 일했고, 보정시 기차 3부대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보정시 문학 예술계 연합회의 전문 작가였다. 하북성 작가협회 이사이다. 1979년부터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고, 1990년에 중국 작가 협회에 가입한다. 주요 저작으로는 단편소설집 《梦中的合欢树》, 중편소설 《秋天印象》,단편소설《春天印象》、《小城碎语》등이 있다.
43. 鄢烈山(언렬산: 1952~)
잡문가 겸 시사평론가. 1952년 1월 호북성 선도시에서 출생. 1982년 7월 북경사범대학 중문과를 졸업했다. 퇴직 전에 남방 신문매체의 선임 편집자였고, 후에는 총서 《白纸黑字》의 편집을 주관했다. 주요 저작으로는 《点灯的权利》등 개인 산문집 21종이 있고, 그 중 《一个人的经典》은 전국 제3회(2001-2003) 노쉰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외에도 《威凤悲歌:狂人李贽传》등의 전기 작품이 있다.
44. 杨东平(양동평: 1949~)
1949년 9월에 산동에서 출생. 북경공업학원을 졸업했다. 북경 이공대학 교육 연구원 교수이자 박사생 지도교수, 국가 교육 자문 위원회 위원, 국가고시지도 위원회 위원, 중국 도행지 연구회 상무 부회장, 21세기 교육 연구원 원장, 自然之友 이사장을 맡고 있다. 주요 연구방향은 교육현대화이론, 교육공평, 교육공공정책 등이다. 중국 중앙방송국 《实话实说》, 凤凰위성TV의 《世纪大讲堂》의 기획을 맡았다. 중국 교육개혁, 생태환경보호, 역사문화보호, 전통문화계승과 개조, 교육 공평 등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실제적인 행동으로 참여하고 있다.
45. 杨小凯(양소개: 1948年10月6日-2004年7月7日)
본명은 양희광(杨曦光), 1948년에 길림성에서 출생하고 2004년에 사망함. 본적은 호남성. 오스트레일리아 경제학자. 그의 가장 큰 공헌은 신흥 고전 경제학과 한계분석(Inframarginal Analysis) 방법 이론을 제기한 것이다. 이미 출판된 중영문 저작으로는 《专业化与经济组织》、《经济学:新兴古典与新古典框架》、《发展经济学:超边际与边际分析》 등이 있는데, 이러한 저작으로 인하여 그는 전세계적인 성과를 거두고 추앙 받게 된다. 2002년과 2003년에 노벨경제학상 후보자로 두 차례 거명되었다. 2004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향연 56세로 별세한다.
46. 杨锦麟(양금린: 1953.09. ~)
중국 복건성 하문 출생. 시사 평론가 겸 저명한 칼럼 작가. 하문 대학교 역사과 졸업. 1988년홍콩으로 건너가 신문사의 편집일과 주필 및 잡지 편집 등의 일을 맡았고 오랜 기간 시사평론 일을 했다. 2002년 10월에는 凤凰卫视에 입사했고, 프로그램 《有报天天读》과 《周刊点点评》의 진행을 맡아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11년 6월 1일 凤凰卫视를 떠나서 香港卫视 부총재 겸 집행대장을 맡게 된다. 주요작품으로는 《有报天天读》, 《夜夜谈》 등이 있다.
47. 殷海光(은해광: 1919.12.05~1969.09.16.)
본명은 殷福生. 본적은 호북성. 중국의 유명한 논리학자이자 철학가. 일찍이 저명한 논리학자이자 철학가인 金岳霖 선생을 스승으로 모셨다. 西南联大 졸업 후, 청화대학 철학 연구소에 들어갔고, 금융대학(현 남경대학의 전신)에서 교수로 역임했다. 항일전쟁이 일어난 후 청년군에 가입했다. 1949년 대만으로 건너갔고 그 해 8월에 대만대학 철학과의 교수직을 맡게 된다. 《中央日报》、《自由中国》의 주필을 맡았다. 그는 루소, 哈耶克 등의 영향을 받아서 그의 문장 저술 방법은 과학적이고 개인주의, 민주계몽의 정신을 기준으로 삼았다. 그래서 그는 대만 자유주의의 창시자로 불린다. 1969년 9월 16일에 향년 50세로 별세한다. .
본적은 장쑤. 남경대학, 서남정법대학, 북경대학, 하버드대학 등을 졸업한 후, 현재는 ‘零点연구자문집단’의 회장을 맡고 있다. 북경대학 사회학 박사, 하버드대학 캐내디 정부 학원 MPA, 서남정법대학 법학 석사, 2007년 예일대 세계학자 등을 거침. 중국시장연구협회부회장, 북경과학자문업협회이사장, 세계전문연구인사협회 중국지역대표, 북경유학생상회부회장 등을 맡고 있으며, 청화대, 남개대, 서남교통대, 중국매스미디어 대학, 중앙미술학원 등 겸업 교수직을 맡고 있다. 주요저작으로는 《平民这边,富人那边》、《中国消费文化调查报告》 등이 있다.
(정리: 김혜연, 검토: 이광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