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근현대 지식인 교육가

조회 수 951 추천 수 0 2022.04.29 14:42:52

우원차오(吴文藻), (1901~1985)

장쑤성 장인(江陰) 출신. 중국의 저명한 사회학자, 인류학자, 민족학자로, 중국 사회학, 인류학과 민족학의 현지화, 중국화의 최초의 주창자이자 적극적인 실천자였다.

1917년 청화학당에 입학하였고, 1923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다트머스 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하여 학사학위를 받은 뒤 뉴욕 컬럼비아대 학과에 진학해 박사학위를 받고 학교 측으로부터 '최근 10년 내 최고의 외국인 유학생' 표창장을 받았다.

19296월 빙심(氷心, 셰완잉)과 결혼하여 연경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저명한 학자인 비효통, 임요화, 황화절, 구동조, 황적, 이유의, 진영령이 모두 우원차오를 사사했다.

1938년 운남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39년 사회학과를 창설하고 연경대와 운남대가 협력하는 실사역을 만들었다.

1940년 국방최고위원회 참사실에서 근무하며 변강 민족의 종교와 교육 문제에 대하여 연구구했다. 1946년 주일 중국대표단 정치팀장으로 일본에 건너가 동맹국 대일위원회 중국대표고문을 겸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후, 우원차오는 애국 열정에 불타 1951년 고국으로 돌아왔다. 1953년에는 민족학원 교수, 연구부 국내소수민족상황교육실 주임, 역사학과 민족지교육실 주임을 지냈다. 1959년 이후 컴파일러에 종사했다.

1979년 중국사회학연구회 고문으로 초빙됐다.

1980년 제1기 중국민족학학회 고문으로 초빙됐다.

1985924일 병사했으며, 유언에 따라 영결식과 추도식은 진행되지 않았다. 중앙민족대학교는 1996년부터 후진을 장려하기 위해 우원차오 문화인류학 장학금을 설립했다.


출처: https://baike.baidu.com/item/%E5%90%B4%E6%96%87%E8%97%BB


구위수(龜尉洙), (1902~2002)

장쑤 우시(無錫) 출신의 과학자, 교육자, 시인, 연극인, 음악가, 불학자.

1915년 청화학당에 입학하였고, 1923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였으며, 1928년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귀국 후 저장(浙江), 중앙대, 칭화(淸華)대 등의 교수, 전기과 주임, 공과대학장을 역임했다. 항일전쟁 당시 국민정부교육부 정무차장, 중앙대학교 총장을 맡았고, 항전 승리 후 상하이 시 교육국장, 국립정치대학 총장을 지냈다. 1950년 매사추세츠공대 교수로 부임한 뒤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종신교수로 일했다. 1970년대부터 귀국해 칭화(淸華베이징(北京난징(南京저장(浙江)대 등 10여 개 학교의 명예교수로 활동했다.

구위수는 중서,박고통금(博古通今)으로 중국 근대의 뛰어난 문리대사이다. 과학적으로는 국제 전기모터의 권위와 현대 자동제어 이론의 선구자이다. 교육에 있어서, 칭화대학 공과대학의 주요 기초자이다. 문학예술에서는 시가사곡집 34편을 발간하는 등 세계시인대회에서 대관한 '국제계관시인'이자 중국 현대연극의 발제자이자 추진자, 중국 황종표준음 제정자이며 중국 고악의 연구 권위자, 불학에서는 영어 거작 '선사'와 여러 불학전작이 국제불학계에서 중시되고 있다.

구위수는 중국전기공학회 설립자 겸 회장, 중국공학자학회 부회장, 국제이론 및 응용역학 조직 개인 이사, 미국 국가과학원 이론 및 응용역학위원회 위원, '중연구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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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손(叶企孙), (1898~1977)

예기손은 중국 근대물리학의 기초자이며 중국 물리학계의 일대 종사이다.

그는 칭화대학 물리학과, 이과대학과 북경대학 자학전문팀을 설립하고, 또한 축가정과 함께 자연과학사연구소를 설립하여 대량의 저명한 과학자들을 배출하여 중국 고등교육사업과 과학사업에 탁월한 공헌을 하였다.

1918년 칭화학교(淸華學校, 지금의 칭화대학교)를 졸업하고, 19206월 시카고대학 이학 학사, 19236월 미국 하버드대학 박사, 1948년 중앙연구원 원사로 선출되었으며, 1955년 중국과학원학부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7711379세로 별세했다.

예기손은 평생 교수연구를 하였다. 중국 내에서 처음으로 자학을 연구하였으며, 일찍이 W. 듀안, H. H. 파머와 협력하여 플랑크 상수 h의 값을 측정하여 고압자화의 정확한 방법을 개척하여 압강을 200여 개 대기압에서 12000여 개 기압으로 높였다. 칭화대학 물리학과, 베이징대학 자기학 전문팀을 창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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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샹(蒋南翔), (1913~1988)

191397일 장쑤(江蘇)성 이싱(宜興)현에서 태어났다. 그는 중학교 시절부터 애국 활동에 적극 참가했다.

1932, 칭화대학에 입학하고, 1933년 가을,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여, 당이 이끄는 '()'에 차례로 참가하였다. '민족무장자위회''민족무장자위회'의 업무로 칭화위크와 '북방청년' 등의 진보간행물을 주필해 진보사상을 전파한다.

1935, 유명한 "1, 2·9"애국구망운동에서,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던 장난샹은 상급자를 받았다. 당 조직위는 '청화대학교 구국회가 전국동포에게 고하는 글'을 기안하고 "화북의 크기에 이미 평온한 책상을 둘 수 없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 외침은 민중의 민족독립을 불러일으키는 나팔수가 되었다. 그 후 항일 전쟁과 해방 전쟁 시기를 거치면서, 장난샹은 줄곧 청년 일에 종사하여 청년 운동의 선두에 서게 됐다.

19363, 상해에서 학위 장완구 당서기를 맡아, 직접 푸단·퉁제 등 대학의 지배를 이끌었다. 부서 업무. 북평으로 돌아가 북방국이 직접 이끄는 북평시 학위 서기로 근무한다. 항전이 발발하자 그는 북방국 청위위원 겸 북방국 선전부 간사를 맡아 류샤오치(劉少奇)의 당내 간행물 '투쟁' 편성을 도왔다.

1938년 초 장강국 청위위원, 전국학련당단 서기를 지냈다. 무한에서, 그는 제사를 준비하고 주재하였다. 2차 전국학련대표대회, 그리고 우한청년구국단 창립에 참가했다.

1939년 초, 남방국 청위원회 서기로 부임하여, 대후방 청년 업무에서, 그는 저우언라이의 지도 아래, 단호히 통달하였다. 은폐에 관한 중앙의 치밀한 정책을 집행하고 청년운동의 근간을 보존·발전시켰다.

19412월 연안을 철수시키고 중국공산당 중앙청위 위원, 중앙청위 선전부장을 맡아 해방시켰다. 사설위원회 위원 자격으로 청년 일자리에 대한 기사와 조사 보고서를 적지 않게 썼다.장난샹은 옌안의 정풍운동에 적극 가담해 후기에 나타난 응급처치에 대해 과감하게 비판의견을 냈고, 중앙에도 응급처치에 관한 의견서를 썼다. 항전 승리 후 당 중앙에서 파견돼 청년공작대를 이끌고 동북지방으로 청년사업을 개척했으며, 요북분성 위원 겸 선전부장, 하얼빈시 상무위원 겸 선전부장, 시 교육국장, 동북국 청서기, 하얼빈 청간교 교장, 동북국 당보위원회 서기장을 거치며 동북 근거지 건설을 위한 청년의 골간을 키웠다. 이 기간 프라하, 바르샤바를 거쳐 국제청년회의에 참석했다.

19491월 중앙청위에 근무하여 신민주주의청년단주재위원회 부주임을 맡았으며, 전국 제1차 연대대회에서 연대 중앙부서기에 당선됐고, 서기처 서기로 자리를 옮겨 중국청년보를 창간하는 등 건국 초기 연대 조직 건설과 사상 건설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195212월 장난샹은 칭화대 총장, 당서기가 됐다.

195510월 베이징시 상무위원, 베이징시 고등학교 당위원회 제1서기를 지냈다. 같은 해에 그는 저우언라이 총리, 천이 동지, 교육부에 청화, 북대에서 원자력 과학 기술 등의 첨단 기술 전공을 개최하자고 제안하고 소련에 단체 답사를 갔다.

19565월 장난샹은 칭화대 당서기를 겸직했다.

칭화대학에서 일하는 동안 그는 당의 교육업무방침을 관철하고, 외국의 선진경험을 흡수하여 중국의 실정에 맞는 사회주의적 학교설립의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하였다. 그는 최신 과학 기술의 발전을 중시하여 원자력·자동제어 등 다양한 신흥학과를 만들었다. 장난샹은 칭화대학의 탐구와 피나는 작업으로 사회주의 교육의 경험을 풍부하게 하고 고등교육에 영향을 끼쳤다. 개혁은 중국의 교육제도를 개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중국 교육이론의 보고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1977, 장난샹은 천진시 당서기, 시혁위원회 부주임 겸 시과위원회 주임을 맡았는데, 중학교 저우언라이 기념관을 열고 고교 통합전형을 조속히 재개할 것을 적극 건의했다.

1978, 그는 국가 과학 위원회 상무 부주임으로서, 전국 과학 대회 비서장을 맡아, 전국 과학 기술을 제정하기 위해 활동하였다. 수술 발전 계획과 대회 개최로 많은 조직 지도자의 업무를 수행하였다. 그는 덩샤오핑의 의뢰를 받아 베이징대학·칭화대학·베이징사범대학에서 조사를 실시하여, 고등교육의 혼란 반정에 관한 시스템 건의를 제출하였고, 덩샤오핑이 직접 관련 부서에 비준하여 관철시켰다.

1979, 교육부장을 중임한 후, 장남상은 교육 전선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키며, 회복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다."

19828월 장난샹은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제1부교장으로 부임했다. 중앙 지도자의 의견과 건의로 그는 왕전진을 도와 당학교 업무를 탁월하게 이끌었다. 그는 당의 12대 당직자 정규화 방침에 따라 체계적으로 당학교육의 정규직화 의견을 제시해 중앙의 승인을 받았다. 이것은 중앙당교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전국 각급 지방당교의 개혁과 건설에 대한 중요한 지도와 추진의 역할을 수행하여 당교사업을 크게 진전시켰다.

1983, 1011일부터 12일까지, 당의 122중 전회에서 중국공산당 중앙의 정당에 관한 결의를 통과시켰다. ''은 후야오방을 주임으로, 보이보를 부주임으로 하는 중앙정당공작지도위원회를 선출했고, 위원직을 맡았다.


출처: https://baike.baidu.com/item/%E8%92%8B%E5%8D%97%E7%BF%94

탕궈안(唐国安), (1858~1913)

자는 국록(國祿), 호는 개신(介臣), 광둥성 광저우부 향산현 탕자진인 출신.

청 말 민초의 외교가이자 교육자, 칭화대학의 설립자이자 초대 총장이다.

19124월부터 191210월까지 청화학당의 감독을 맡았고, 191210월부터 19138월까지 청화학교(淸華學校, 칭화대학교 전신) 초대 교장이 되었다. 탕궈안이 중국 근대화에 기여한 가장 큰 공로는 '경관'의 대미(美美) 교육 활성화에 참여해 조기 청화(淸華)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191111월 청화학당은 신해혁명으로 잠시 문을 닫아야 했다.

청화학당은 19125월 당나라안의 끈질긴 노력 끝에 새 정부의 지원을 받아 복학할 수 있었다. 탕궈안은 10월 초대 총장으로 임명됐다. 탕궈안은 칭화 교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여러 차례 교정을 확충하여, 각종 조치를 통해 학생들의 자질 수준을 높이고, 학교의 격을 높여, 학생들의 미국 내 단축을 도모하였다. 학사일정 연한은 석·박사 학위를 조기 이수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학비 삭감·전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주히 돌아다녔다. 1913년 당나라안은 피로가 쌓여 교장으로 병사했다.


출처: https://baike.baidu.com/item/%E5%94%90%E5%9B%BD%E5%AE%89/7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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