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근현대 지식인 교육가

조회 수 679 추천 수 0 2022.08.25 14:49:26

천왕다오(陈望道) (1891-1977)

천왕다오는 중국 현대의 저명한 사상가, 사회활동가, 교육가와 언어문학가, 5·4신문화운동의 적극적인 추진자이다.

일본 와세다대에서 유학하다 귀국한 뒤 저장 제1사범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공산당 선언을 번역했다. 19205월 상하이로 건너가 신청년의 편집장을 맡았고, 천두수·이한준·리다 등과 마르크스주의 연구회를 조직했다. 중국공산당이 성립된 후, 그는 중국공산당 상해지방위원회 서기를 맡은 후, 천두와 함께 지내다 갈등이 생겨 탈당했다. 이후 푸단대에서 교편을 잡은 그는 저명한 언어학자이자 교육자였다. 1949년 이후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 전국정협 상무위원, 민맹 중앙부주석, 중국과학원 철학사회과학부 위원을 역임했다.

 

출처 : https://baike.baidu.com/item/%E8%B4%BA%E6%B0%91%E8%8C%83/10319960?fr=kg_general

 

이석증(李石曾) (1881-1973)

1902년 손보기 주프랑스 공사를 따라 프랑스로 건너갔다. 파리에서 몬다돈 농학교, 졸업 후 파스퇴르 아카데미와 파리대 생물학과에 입학했다. 1906년 장징장·우치후이 등과 함께 파리에서 '세계사'를 조직해 아나키즘을 확산시켰다.같은 해 장정강의 소개로 이석은 동맹회 파리 지부에 가입했다. 1911년 이석은 신해혁명에 참가하기 위해 귀국했다. 톈진에서는 황푸성 등과 함께 경진동맹회를 조직해 민의보를 발간하고, 북한에서 혁명을 선전·조직했다.

1917년 귀국해 베이징대 교수를 지냈고, 중국법학원·중앙연구원을 설립했다. 1924년 국민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에 참가하여 중앙감찰위원으로 선출되었다. 푸이추출궁과 고궁박물관 창건 등에 참여했고, 청실선후위원회 위원장 등으로 영입됐다. 1928년 국민정부가 임명한 고궁박물관 이사 중 1위를 차지해 초대 이사장이 됐다. 1949년 해외로 이주해 1956년 대만으로 돌아와 국민당 평의회 주석단 주석을 맡아 국민당 내에서 원로 중 한 명으로 추앙받았다.

19274월 우치후이·장징장 등과 여러 차례 회의를 열어 장제스의 반공을 선동하고 지지했고, '4·12' 반혁명 쿠데타를 일으킨 리석은 장제스가 난징에서 국민정부를 수립하는 것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19289월 장효약의 초청으로 사립 남통대학의 수석 교사로 부임하였다.

항전 기간 동안 리시는 일찍이 구미에서 외교 활동을 하였다. 1948년 대통령궁 자정으로 귀국한 그는 1949년 이후 스위스로 향했다.

1956년 대만에 정착한 이석은 197393092세의 나이로 사망해 타이베이 양밍산에 묻혔다.

 

출처 : https://baike.baidu.com/item/%E6%9D%8E%E7%9F%B3%E6%9B%BE/8122577?fr=kg_general

 

온응성(温应星) (1887-1968)

중국인 유학생 최초로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칭화대학교 총장을 지냈다. 1905615일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에 입학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버지니아 사관학교에 입학한 두 사람 중 한 명이다. 당시 미국 의회는 웨스트포인트가 중국 학생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특별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원 장군은 1909년 전체 103명 중 82위로 졸업했지만 '실용군사공학' 과목에서 2위를 차지했다.

 

옹문호(翁文灏) (1889-1971)

신사 집안에서 태어나 청나라 말기에 벨기에에서 유학하여 지질학을 전공하고 이학 박사학위를 받고 1913년 귀국하였다. 민국 시대의 저명한 학자이자 중국 초기의 가장 저명한 지질학자이다. 중국의 지질학 교육, 광산 탐사, 지진 연구 등 다방면에 걸출한 공헌이 있다.

그는 중국 최초의 지질학 박사, 중국 제1지질학 강의의 편집자, 중국 광산지를 저술한 첫 번째 중국 학자, 중국 최초의 채색 전국 지질도 편집자, 중국 최초의 지진 재해 조사 및 지진 전문 저서 출판 학자, 첫 번째 중국 광업기요의 창립자 중 한 명, 첫 번째 중국을 대표하여 국제 지질 회의에 참석한 지질학자이다. 중국산맥을 통·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중국학자이며, 중국의 석탄을 화학성분별로 분류한 최초의 학자이고, 연산운동 및 이와 관련된 마그마 활동과 금속광상 형성 이론의 창시자, 중국 최초의 유전을 개발한 조직지도자이다.

사립 자오작 공과대학(현 중국광업대학과 허난이공대학)의 총동원을 지냈다. 명학자로 국민의 정부 내에서 활동했으며 항전 기간 광무 자원과 생산을 주관했다. 옹문호는 1930년대의 '학자 종정파' 중에서 벼슬이 가장 높고 우여곡절을 겪은 사람으로, 걸출한 지질학자이다.

 

출처 : https://baike.baidu.com/item/%E6%B8%A9%E5%BA%94%E6%98%9F

 

첸쉐썬(钱学森) (1911-2009)

1959년 중국공산당에 입당해 공기역학자와 계통과학자, 공정제어론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중국과학원 학부위원, 중국공정원 원사, 21성 공훈장 수상자다.

1934년 교통대학 기계공학과 졸업, 1935년 제7회 경자 배상금 국비로 미국으로 연수. 1936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 석사과정 졸업, 그 후 캘리포니아공과대학 항공학과로 편입하여 시어도어 폰 카르멘 박사, 1939년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 항공·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교편을 잡았다. 1945년 독일로 건너가 나치 독일의 로켓 과학기술을 조사했고, 1955년 마오쩌둥 주석과 저우언라이 총리의 쟁취로 6·25 공중전에 포로로 잡힌 미군 조종사 여러 명을 교환해 중국으로 귀환했으며, 1956년 중국과학원 역학연구소 초대 소장, 1957년 국방부 제5연구원 초대 원장을 거쳐 같은 해 중국과학원 학부위원(원장), 1958년 중국과학기술대학 근대역학과 창설 초대 주임, 1984년 중국과학원 주석단 집행주석, 1986년 중국과학기술협회 제3차 전국위원회 주석, 1986~1998년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제6, 7, 8차 전국위원회 부주석, 1999년 탄성훈장을 각각 받았다.

첸쉐썬은 20091031일 베이징에서 98세로 별세했다.

 

출처 : https://baike.baidu.com/item/%E9%92%B1%E5%AD%A6%E6%A3%AE/26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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