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근현대 지식인 교육가

조회 수 694 추천 수 0 2022.10.26 13:59:00

장팽춘 (张彭春) (1892-1957)

톈진(天津) 출생으로 중국의 교육자, 초기 연극(신극) 활동가, 연출가, 외교가, 장백령의 친동생이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교육학과 철학을 공부한 후, 1916년 톈진으로 돌아와 그의 형인 저명한 교육자 장백령을 도와 난카이 중학교를 주재하고 난카이 대학교 교수를 맡았으며 동시에 난카이 신극단의 부단장을 겸임하였다.

1919, '5·4운동'을 앞장서서 주도하였다. 19239월 칭화(淸華) 교무처장을 지냈으며, 같은 해 문우(文友)와 함께 '신월사(新月社)'를 창설하고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1957719일 미국 뉴저지에서 심장마비로 65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출처: https://baike.baidu.com/item/%E5%BC%A0%E5%BD%AD%E6%98%A5/3021686?fr=kg_general

 

마상보(马相伯) (18401939

중국 근대 교육가.

중국의 교육자, 진단대학, 복단대학, 복단중학교, 향명중학교 설립자 겸 초대 총장, 애국인사이다. 걸출한 교육자 채원배, 민국고관 위우린과 샤오리쯔가 그 제자이다. 후손집으로는 마상백선생문집이 있다. 마상보는 65세 때 교육계에 헌신을 하였다. 남양공학(상하이 교통대학 전신)에서 퇴학당한 학생들을 모아 푸단대학을 설립하고 민주와 종교의 자유를 제창하는 글을 연일 발표하기도 하였다.

출처: https://baike.baidu.com/item/%E9%A9%AC%E7%9B%B8%E4%BC%AF?fromModule=lemma_search-box

 

뤼수샹 (吕叔湘) (1904-1998)

한족이며 저명한 학자이자 언어학자. 현대 한어 사전의 편집장이었다. 1936년에 영국에서 유학 후, 1938년 귀국하여 운남대 문사학과 부교수를 거쳐 화서협화대 중국문화연구소 연구원, 금릉대 중국문화연구소 연구원 겸 중앙대 중문학과 교수, 개명서점 편집장 등으로 지냈다.

해방 후 1952년부터 중국과학원 언어연구소(1977년부터 중국사회과학원으로 소속) 연구원을 거쳐 중국과학원 철학사회과학학부 위원, 언어연구소 부소장, 소장, 명예소장을 역임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中国文法要略》《语法修辞讲话》(与朱德熙合著)、《汉语语法分析问题》《汉语语法论文集增订本)》 등이 있다.

출처: https://baike.baidu.com/item/%E5%90%95%E5%8F%94%E6%B9%98/281096?fromModule=lemma-qiyi_sense-lemma

 

차오청잉(曹诚英) (1902-1973)

중국 농학계 최초의 여성 교수이다. 차오청잉의 집은 부유한 상인이었다. 다섯 살 때부터 서당에 다니며 '효경', '제자규', '사서', '유학경림' 등을 읽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문학을 편애하고 특히 시와 사를 좋아했다.

1925년 동남대학교 농과(農科)를 졸업하고 1931년 중앙대학교 농과대학(中央大學校農學院)을 졸업하고, 남아 교편을 잡았다. 1934년 미국 코넬대 농과대학에서 유전육종을 전공하다 1937년 유전육종학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뒤 같은 해 귀국한 뒤 안후이대 농과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한 중국 농학계 최초의 여성 교수였다. 1943년에는 푸단대학 농과대학에 가서 전임교수가 되었다.1952년 학과 조정으로 푸단대학 농과대학의 일부와 함께 새로 설립된 선양 농과대학의 교수로 부임하였다. 1956년 선양(阳陽)시 정협위원으로 선출되었고, 폐암으로 상하이에서 사망했다.

출처: https://baike.baidu.com/item/%E6%9B%B9%E8%AF%9A%E8%8B%B1?fromModule=lemma_search-box

 

주건인 (周建人) (1888-1984)

저우젠런(周建人)은 중국민주촉진회의 창립자 중 한 명이며, 현대의 저명한 사회활동가, 생물학자, 루쉰 연구전문가, 여성해방운동의 선구자 중 한 명이다. 동명의 전기가 있다. 1919, 주건인은 북경으로 이주하였고, 23년 동안 생물학 연구에 전념하고 저술 및 번역에 종사했으며 '동양잡지', '여성잡지', '자연과학잡지'에 글을 발표하여 여성의 해방을 옹호하고 과학 지식을 대중화했다.

1923년 취추바이(秋秋白)의 초청으로 상하이대학에서 진화론을 강의하였고, 상하이 치난대학과 안후이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였다.

1984729, 저우젠인은 베이징에서 사망했다.

출처: https://baike.baidu.com/item/%E5%91%A8%E5%BB%BA%E4%BA%BA/768273?fromModule=lemma-qiyi_sense-lemma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0 중국 역사상의 언론인 HK+연구사업단 2024-04-29 3
69 중국의 역사학자 HK+연구사업단 2024-04-25 6
68 중국의 역사학자 HK+연구사업단 2024-03-25 26
67 중국의 역사학자 HK+연구사업단 2024-03-07 44
66 중국의 역사학자 HK+연구사업단 2024-01-26 86
65 중국의 역사학자 HK+연구사업단 2023-12-21 136
64 중국의 역사학자 HK+연구사업단 2023-11-24 162
63 중국의 역사학자 HK+연구사업단 2023-10-25 212
62 중국의 역사학자 HK+연구사업단 2023-09-27 168
61 중국의 역사학자 HK+연구사업단 2023-08-28 274
60 중국의 역사학자 HK+연구사업단 2023-07-26 232
59 중국의 역사학자 HK+연구사업단 2023-06-26 295
58 중국의 역사학자 HK+연구사업단 2023-05-25 427
57 중국의 역사학자 HK+연구사업단 2023-03-23 360
56 중국 근현대 지식인 교육가 HK+연구사업단 2022-11-29 560
» 중국 근현대 지식인 교육가 HK+연구사업단 2022-10-26 694
54 중국 근현대 지식인 교육가 HK+연구사업단 2022-09-28 576
53 중국 근현대 지식인 교육가 HK+연구사업단 2022-08-25 679
52 중국 근현대 지식인 교육가 HK+연구사업단 2022-08-25 751
51 중국 근현대 지식인 교육가 HK+연구사업단 2022-08-19 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