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분제로(河汾諸老)’의 시인

   ‘하분제로(河汾諸老)’는 금원(金元) 시기 유민 시인 군체이다. 원대 대덕(大德) 7년(1303)에 방기(房祺)가 편찬한 《하분제로시집(河汾諸老詩集)》에서 명명되었다. 이 시집에는 마혁(麻革)·장우(張宇)·진경(陳賡)·진유(陳庾)·방호(房皡)·단극기(段克己)·단성기(段成己)·조지겸(曹之謙) 8명의 시 작품 총 201수가 수록되어 있다. 진경, 진유 외에 6명은 모두 유민이므로 일반적으로 《하분제로시집》을 유민시집이라 일컫는다. 하분(河汾)의 시인들은 시 작품 속에서 당시 역사적 분위기와 현실에 대한 인식 및 은일의 심리를 주로 반영하였고, 하분(현 산서山西 서남쪽)이라는 지역적 시인 군체로서의 지역적 특징도 보여주었다. 《하분제로시집》에 실린 마혁·장우·진경·진유·방호·단극기·단성기·조지겸 8명의 생평에 대해 간단히 소개한다.

1. 마혁(麻革: 1184-1261)

   자 신지(信之), 호 이계(貽溪). 산서(山西) 우향(虞鄉) 왕관(王官: 현, 영제永濟) 사람. 금원(金元) 시기 유명한 문학가이며, 하분시파(河汾詩派)의 주요 시인 중의 한 명이다. 훗날 내향산(內鄉山)으로 은거하여 시 창작을 업으로 삼으며 교수(教授)로서 생을 마쳤다. 이계선생(貽溪先生)이라 부른다. 저서로 《이계집(貽溪集)》이 있다.

   마혁의 부친 마병이(麻秉彝)는 병부시랑(兵部侍郎)을 역임했다. 마혁은 평생 도를 좋아하며 벼슬을 하지 않았다. 금사(金史)의 기록에 보면, 마혁은 원나라 초에 도성으로 가서 상서성이 되었는데, 최립(崔立: 변경을 지키던 금나라 관원으로, 후에 변경을 몽골군에게 바침)을 위해 공덕비(功德碑)를 세우는 글을 쓰는 바람에 조정에서 심한 고충을 받았다. 만년에는 조정에서의 벼슬자리에 극도로 거부했다.

   마혁의 주요 성과는 시 창작에 잘 드러난다. 칠언고시(七言古詩)는 이백(李白)의 풍격이 드러나 있고, 오절(五絶)과 칠율(七律)에는 두보(杜甫)의 침울하고 비장한 풍격이 엿보인다. 작품은 《하분제로시집》에 35수가 실렸다.

2. 장우(張宇): 미상

3. 진경(陳賡: 1161-1217)

   자 진경(晉卿). 금택주(金澤州) 능천(陵川) 사람. 진사에 급제하지 못해 원호문(元好問)을 모시며 수학했다. 평생 교학(教學)에만 종사했다.

4. 진유(陳庾: 1194-1261)

   자 자경(子京), 호 담헌(澹軒). 금원 시기 평양부(平陽府) 사람. 진경(陳賡)의 아우이다. 금말 전란을 피해 려씨산(廬氏山)에 은거했다가 후에 평양(平陽) 교수(教授)가 되었다. 원 세조 쿠빌라이 중통(中統) 원년, 평양로제거학교관(平陽路提舉學校官)으로 제수받았다. 시 작품은 《하분제로시집》에 보인다.

5. 방호(房皡: 1199-1282)

   자 희백(希白), 호 백운자(白雲子). 평양(平陽) 혹은 임분(臨汾: 현, 산서 임분 일대) 사람. 금(金) 승안(承安) 4년(1199)에 태어나 원(元) 지원(至元) 18년(1281)에 세상을 떠났다. 금말원초 하분팔로(河汾八老) 중의 한 명이다. 금원 교체기의 시인으로 원호문 등과 긴밀한 교유 관계를 유지했다. 저서로 《백운자집(白雲子集)》이 있으나 실존하지 않는다. 《하분제로시집》에 시 한 권이 실려있다.

6. 단극기(段克己: 1196-1254)

   자 복지(復之), 호 둔암(遁庵), 별호(別號) 국장(菊莊). 금대 문학가. 강주(絳州) 직산(稷山: 현, 산서 직산) 사람. 어려서부터 동생 단성기(段成己)와 이름을 날렸으며, 조병문(趙秉文)은 이들을 일러 “이묘(二妙)”라고 불렀다. 애종(哀宗) 때 동생 단성기와 연달아 진사에 급제했지만, 벼슬자리에 나아간 후 문호(門戶)가 없어서 산촌에서 한거한 생활을 보냈다. 금나라가 멸망한 후 용문산(龍門山: 현, 산서 하진河津 황하 주변)으로 피난 갔는데, 당시 사람들이 “유림(儒林)의 표준”이라고 칭찬했다. 몽고 칸국(汗國) 시기에 친구와 함께 산속을 찾아다니며 결사(結社)를 하고, 시를 지으며 자적(自適)한 생활을 보냈다. 원 헌종(憲宗) 4년(1254)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특히 사곡(詞曲)에 능했으며 《둔재악부(遁齋樂府)》가 있다.

7. 단성기(段成己)

   자 성지(誠之), 호 죽헌(菊軒). 단극기의 아우. 직산(稷山: 현 산서 직산) 사람. 형 단극기와 함께 문장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조병문(趙秉文) 이들을 “이묘(二妙)”라고 칭찬했다. 금(金) 정대(正大) 연간에 진사가 되었다. 금이 멸망한 후 형 단극기와 함께 용문산으로 피신했다. 원 세조 쿠빌라이는 그를 평양부(平陽府) 유학제거(儒學提舉)로 제수했으나 사양하고 받아들이지 않았고, 외부와의 교류를 끊고서 글공부에만 전념했다. 문집으로는 형 단극기와 자신의 시를 합간(合刊)한 《이묘집(二妙集)》이 있고, 사(詞) 작품으로 《국헌악부(菊軒樂府)》1권이 있다.

   단극기는 과거에 급제했지만 벼슬길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자적(自適)한 삶을 살았다. 두 형제 모두 의양주부(宜陽主簿)에 제수받았다. 금이 멸망한 후 그는 형 단극기와 함께 용문산(龍門山)으로 피난 가서 살았다. 형 단극기가 죽은 후 용문산에서 진녕(晉寧) 북곽(北郭)으로 옮겨와 두문불출하며 근 40여 년을 글공부에 매진했다. 원 세조 쿠빌라이는 단성기를 평양부(平陽府) 유학제거(儒學提舉)로 제수했으나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 지원(至元) 16년 향년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8. 조지겸(曹之謙)

   자 익보(益甫). 금원(金元) 간의 대동(大同) 응주(應州) 사람. 어려서부터 공부에 매진하여 일찌감치 위과(巍科: 대과大科. 문과文科를 말함)에 발탁되었다. 얼마 후 원호문과 함께 동조(東曹)의 벼슬아치로서 문자(文字)를 교정하면서 지냈다. 후에 평양(平陽)에서 30여 년을 살면서 제생(諸生)들과 강학(講學)을 하고, 이낙(伊洛: 북송의 정호·정이 형제가 강학하던 이천伊川과 낙양洛陽을 말함. 후에 송대 성리학을 뜻하기도 함)을 종주로 삼았다. 고문(古文), 잡시(雜詩) 근 300여 수가 있으며, 저서로 《태재문집(兌齋文集)》(《원시선삼집(元詩選三集)》卷一)이 있다.